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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독식(獨食)의 후유증

류명렬 대전남부장로교회 담임목사

류명렬 대전남부장로교회 담임목사

  • 승인 2016-05-26 14:00

신문게재 2016-05-27 23면

▲ 류명렬 대전남부장로교회 담임목사
▲ 류명렬 대전남부장로교회 담임목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정 적자에 시달리던 그리스에서 한 공무원이 세수확충을 위한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구글 어스(Google earth)의 위성사진을 이용해서 아테네 고급주택가에 있는 개인수영장을 찾아내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아테네 북부 고급 주택가인 에칼리(Ekali) 지역에서 자신의 집에 수영장이 있다고 신고하고 세금을 내는 사람은 324명에 불과했다. 구글의 위성사진을 이용해 수영장으로 보이는 파란색 사각형을 세어보았고, 그 결과 세무당국은 무려 1만6974개의 수영장을 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 부유층의 98%가 탈세를 해 왔던 것이다.

또한 그리스 의사들은 약 3분의 2가 1년 소득을 비과세 대상인 1700만 원 이하로 신고했다. 일부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영수증을 전혀 발급해 주지도 않고, 연소득을 440만 원 정도로 신고하기도 했다. 그리스 의사들의 3분의 2가 고액의 소득에도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던 것이다. 국가는 재정 위기의 상황이고, 유럽연합 내에서도 골칫거리의 신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기적인 탈세가 부유층에 만연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복지정책에 있어서도 행정직 공무원, 법조인, 그리고 교직원들은 압력을 행사해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연금정책을 만들게 했다. 35년간 근무한 공무원이 퇴직 후 매달 96%의 월급을 연금으로 받게 되는 정책까지 만들었던 것이다. 온 국민이 힘을 모아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해 나아가야 함에도, 이기적인 행태들이 계층 간의 대립과 사회 불안의 요소가 된 것이다.

먼 나라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 논 것은 이것이 남의 이야기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우리사회에도 엇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요즘 '김영란법'을 무색하게 하는 법조비리가 사람들을 경악하게 하고 있다. 검사장 출신과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들에게 제공된 상상초월의 수임료와 그 사이의 브로커(broker)들의 존재는, 이 나라의 공법 체계가 돈으로 얼마든지 좌지우지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나라 전체가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보자고, 업무와 관련해 단지 몇만 원의 금품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법을 만드는 시점에서, 명백한 죄를 덮고 무마하기 위해 수십 억, 수백 억의 수임료가 오가는 현실은 분노를 넘어 좌절을 경험하게 한다.


문제는 이 사건이 단지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전관예우라는 이름으로 법조계에 널리 '현상화'되어진 문제라는 데 있다. '힘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가져다주면,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과 '돈이 없거나 힘이 없으면, 그대로 당한다'라는 생각은 계층 간의 대립을 야기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한 때 국가 성장 동력으로 인정받던 조선 해운업의 위기도 예고된 것이었다. 위기의 조짐이 보일 때 위기관리를 하지 않고, 경영진들이 자신의 성과를 나타내기에 바빠서 무리한 수주와 단기 실적에 열을 올렸고, 그 돈으로 성과급 잔치를 했던 것이 비극의 원인이라고 한다. 내일의 파산을 담보로 오늘 잔치를 벌인 꼴이었던 것이다. 거제도와 남해안의 공장들은 문을 닫은 곳이 많고, 관련 대기업들의 도산은 대량의 실업사태를 예고하고 있다.

탐욕은 사회를 병들게 한다. 일부의 탐욕과 독식은 다른 사람의 빈곤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강남역 여대생 살인사건, 시화호의 시신 훼손사건 등은 분명히 개인의 도덕성 자체에 문제가 있는 범죄들이다. 그러나 각박해지고 고단한 삶의 환경은 이들의 범죄와 무관하지 않다. 얼마 전 내한 한 파판드레우(Papandreou) 전 그리스 총리는 그리스 재정위기를 몸소 경험한 시각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아직 성장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했다. 고마운 말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 깨진 유리창처럼 방치해서는 안 될 문제가 바로, 사회정의의 문제다. 이 사회가 공정하다고 느끼며 살 때 최선을 다할 수 있고, 그것이 진정한 성장의 동력이다.

류명렬 대전남부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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