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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살롱] 문제적 작가, 사생활을 예술로 끌어올리다

[백영주의 명화살롱] 트레이시 에민_나의 침대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 승인 2016-08-17 01:00
▲ <나의 침대>, 1998, 에민
▲ <나의 침대>, 1998, 에민

현대로 접어들수록 미술의 범위는 지극히 넓어지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시작된 개념미술이 그 대표적인 예다. ‘종래 예술관을 외면하고 완성된 작품 자체보다 아이디어나 과정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새로운 미술’. 심지어 본인의 사생활을 거리낌 없이 작품에 담아내는 경우도 이제는 흔하다. 개념미술의 토대 위에서 사생활을 소재로 가장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가를 뽑는다면, 트레이시 에민을 들 수 있다.

‘고백의 여왕’이라고 불릴 만큼 자기고백적인 예술 활동으로 널리 알려진 트레이시 에민은 1963년 영국과 터키 혼혈로 7세 되던 해 부모의 사업 실패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으며, 13세에 강간을 당한 후 집을 나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두 번의 낙태 수술과 한 번의 유산, 폭음과 지나친 흡연, 심한 우울증, 그리고 자살 시도 등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파괴하는 행동을 일삼았다. 13세에 학업을 중단하였지만, 친구의 권유로 단기 예술과정에 등록하고 미술을 공부했다. 한때 뭉크와 에곤 실레의 영향을 받아 표현주의 회화를 주로 그렸지만 1992년에 모든 작품을 파기해 버렸다.

이후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에민은 자기 잠재력에 20파운드를 투자해 달라는 편지를 사람들에게 보냈고, 그중 한 명이었던 제이 조플링이 자신의 갤러리에 에민이 전시회를 열 것을 제안했다. 이 첫 개인전의 이름은 <나의 회고전>이었다.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트레이시 에민의 삶을 대중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준 첫 무대였다.


▲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 1963-1995>, 1995, 에민
▲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 1963-1995>, 1995, 에민

“나의 삶이 곧 예술이고 나의 예술이 곧 나의 삶”이라고 말하는 그는 1995년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 1963-1995>로 다시 주목을 받았다. 텐트 속에 이제까지 자신과 함께 잤던 102명의 이름을 적어 넣은 이 작품은 그가 태어난 1963년부터 이 작품이 완성된 1995년까지 그와 잠을 잤던 사람들의 이름, 여기에는 남자 친구의 이름뿐 아니라 자신을 키워주신 할머니의 이름과 가족의 이름, 친구, 낙태로 인해 생명을 얻지 못한 아기의 이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즉 성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같이 잠을 자며 느꼈던 따뜻함까지 모두 담겨져 있는 복합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999년 터너 상 후보에 올라 수상작보다 더 많은 화제를 몰고 다녔던 <나의 침대>는 구겨진 스타킹, 빈 술병, 사용된 콘돔 등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그녀의 실제 침대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설치미술이다. 물론 극적인 연출을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작품일 텐데도 그녀의 ‘실제’ 침대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대부분은 숨기고 싶어할 자신의 치부, ‘실제’ 삶을 적나라하게 침대라는 소재를 통해 드러냈기 때문일 것이다. 낡은 침대와 온갖 잡동사니들로 가득 찬 그의 침대에서 오래도록 자리를 뜨지 못하는 이유는 그 안에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에민은 회화, 드로잉, 콜라주, 퍼포먼스, 사진, 영화, 네온과 미디어 설치 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자기 고백적인 예술에 이용해 왔다. 최근에는 2013년 네온 작품이 미국의 패션지 <하퍼스 바자>에 실리는 등 펑키하고 트렌디한 방향으로의 예술에도 깊게 발을 들이며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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