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서중석 "학우·교수 받드는 총장으로 뼛속까지 보건인 배출하고파"

정성직 기자

정성직 기자

  • 승인 2016-09-27 13:04

신문게재 2016-09-28 11면

[중도초대석] 서중석 대전보건대 총장

서중석 대전보건대 총장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 2006년 서래마을 프랑스인 영아살해사건,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2009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 역사의 한복판에서 망자(亡子)의 이야기를 들어 산자(生子)의 사건을 해결해온 국내 최고의 법의학자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벙언 전 세모그룹 회장 변사 사건도 그가 국과수 원장 재직 시절 풀어낸 사건.

의대 졸업 후 1991년 법의관으로 국과수에 첫발을 내디딘 후 2016년 국과수 원장으로 퇴직하기까지 오롯이 법의학자로서 한길만 걸어온 그가 지난 8월 대전보건대 총장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시종일관 유쾌했던 서 총장을 만나 대전보건대총장으로서 앞으로의 계획과 그간 걸어온 법의학자로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취임한지 2개월여가 지났다. 그간의 소회에 대해 말해 달라.

▲밝고, 젊고, 발랄하고, 미래가 있는 학생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어 굉장히 만족스럽다.

취임하자 마자 학교의 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 취임했을 때 학생들은 물론 교수들도 걸어가면서 흡연을 하고, 화장실도 지저분했다. 또 청결해야 될 가운에도 얼룩이 많았다.

이 모든 문화를 바꾸기 위해 움직였고, 현재 화장실 문화를 바꾸기 위해 비데를 설치하고 있다. 비데는 학교 예산으로 설치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강의 나가서 받은 강의료와 학교를 찾은 사람들에게 기부를 받아서 설치하고 있다.

현재 50대 정도를 설치했는데, 직원들과 학생들이 깨끗해진 화장실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도 학교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총장직을 제의를 받았을 때 고민이 컸을 것 같다.

▲당황스럽지는 않았지만, 고민은 했다. 첫번째는 친구들이 주된 세력들이 서울에 있는데, 대전에서 다시 객지생활을 하는 것에 고민했다. 두번째는 내가 대학총장으로서 능력이 되는지 고민했다. 국과수는 잘 키웠는데, 대학은 전혀 다른 곳이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고민 하던 중 서울권의 대학은 내가 갖고 있는 법의학적 지식만을 원하는 반면, 보건대는 나의 능력을 먼저 인정해줬다. 법의학은 나중에라도 할 수 있지만, 학교를 기획하는 건 기회가 있을 때 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보건대 총장직을 수락하게 됐다.

-취임 후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한 정책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총장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나의 목표는 모든 학생들이 뼛속까지 보건인, 즉 참의료인으로서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다.

다른 대학 총장처럼 일류대학을 만들겠다, 이런 공약 보다는 현실적으로 대전보건대를 나온 의료인은 타 대학 출신 의료인과 달리 친절하고, 사랑이 가득한 의료인이라는 평가를 받도록 하고 싶다.

이를 위해 마스터플랜을 만들었고, 이를 제대로 추진해서 대전보건대를 지역사회에 번듯한 대학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들에겐 위기의 시대다. 평가 방식의 재정지원이나 정원감축 등의 정부 대학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총장으로 부임한지 2개월밖에 안 돼 교육부의 정책을 평가하거나 특별하게 말할건 없지만, 대학은 대학 나름대로 고유한 가치가 있다.

내가 보기에는 어쩔 수 없이 학생수가 줄어들고, 서울, 경기권 대학이라는 블랙홀이 있다. 하지만 대전보건대는 이미 교육부에서 제시한 정책에 대해 잘 준비하고 있고, 여러가지로 내가 논평을 하지 않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본다. 내가 해야될 것은 10년 후 30년 후를 어떻게 준비해 갈 것인가 등이다. 과거 보다 약간의 규제가 있지만, 잘 대처해 나간다면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의사에서 법의학자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우연찮게 국과수에서 의사를 모집해 국과수에 들어갔다.

사명감으로 법의학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2년만 해야지 했는데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나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 2006년 서래마을 프랑스인 영아살해사건,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2009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 큰 사건을 거치다 보니 국과수 수장이 돼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검이 있다면 말해달라.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때는 당시 현장에서 촬영된 사진을 모두 확보해 분석작업을 거쳐 조준사격의 가능성을 증명해 억울한 죽음을 알렸다.

대구지하철, 세월호 등 사건 때 개인식별을 빠르게 해서 인도하는 것을 체계화 했고, 여러 사건의 범인을 잡는데 일조했다. 아무것도 아닌 부검은 없다. 전부다 임팩트가 있고, 의미가 있다.

-법의학자이긴 하지만 부검에 대한 트라우마는 없었나?

▲부검이라는 자체가 즐거운 일은 아니다. 시체를 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부검 결과를 놓고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도 크다.

과학적인 부검에 조작은 있을수 없다. 외압에 의해 결과가 바뀌는 것은 불가능하다.

젊었을 때는 술도 마시고, 운동을 하거나 영화를 보면서 극복했는데, 나이가 들어서는 내공이 쌓이면서 스스로 자연스럽게 극복하게 됐다.

-우리나라의 법의학 수준은 어느정도라고 진단하는가?

▲과거 가난할 때는 수준이 뒤처졌지만, 지금은 톱 수준에 올라와 있다. 단지 인력이 부족할 뿐이다.

돈벌이와 관련돼 있다 보니 돈벌지 말고 법의학을 하라고 할 수는 없다. 나라에서 법의학자를 많이 키우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법의학을 했는데, 나중에 취직할 곳이 없어서 고민하면 누가 하겠느냐? 충청권만 해도 20명이 필요한데, 현재는 4명 밖에 없다. 이런 부분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떤 리더가 되고 싶은가.

▲대학 총장은 모든 학우들과 교수들의 종이라는 생각으로, 내가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받들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조금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번트 리더십(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의 이론)을 가진 리더가 되고 싶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보건대 총장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

▲나는 법의학자다. 언젠가는 법의학을 하는 사람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나만의 방식, 신념을 지켜나가다 보면 '대한민국에 이런 사람이 하나 있었다'라는 평가를 받지 않겠나 싶다.

총장으로서는 학교가 잘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최고의 가치고 이를 위해서라면 불 속에라도 뛰어들어갈 수 있다.


▲서중석 총장은= 1957년생. 중앙대 의대 졸업. 중앙대 의대 대학원 졸업(의학석사). 중앙대 의대 대학원 졸업(의학박사)

2000년 8월~2005년12월 국과수 중부분소 소장. 2005년12월~ 2012월7월 국과수 법의학부장. 2012년7월~ 2016년6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2016년 8월 ~대전보건대학교 총장


대담=오희룡 교육문화부장

정리=정성직·사진=이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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