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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살롱] 극과 극이 만나 빚어낸 순수

[백영주의 명화살롱] 키스 해링_크랙은 안 돼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 승인 2016-10-05 01:00
▲무제(춤추는 개), 1981, 해링 (* 해링의 낙서화 대부분이 <무제>인 경우가 많다.)
▲무제(춤추는 개), 1981, 해링 (* 해링의 낙서화 대부분이 <무제>인 경우가 많다.)


밝은 색채의 몸통, 동그란 머리에 동그란 손발. 친숙한 모양의 얼굴 없는 인물들은 한때 아이들 사이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던 ‘졸라맨’을 닮은 것도 같다. 단순하고 깔끔한 형태가 현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팝 숍’을 직접 열어 우산, 포스터, 벽화, 티셔츠 등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판매한 키스 해링은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생기 넘치는 해링 특유의 인물들 속에 담긴 메시지까지 파악하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키스 해링은 1958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쿠츠타운(Kutztown)에서 성장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흥미를 가졌던 그는 1976년 피츠버그의 아이비전문예술학교에 입학하여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다. 그러나 이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 그는 1978년 뉴욕으로 이사해 시각예술학교(School of Visual Art)에 입학했다. 그는 뉴욕 거리의 벽면과 지하철 플랫폼에 그려져 있는 낙서 스타일의 그림을 보고 깊은 영감을 얻어 길거리, 지하철, 클럽 등의 벽을 캔버스로 삼기 시작했다.

1981년부터 지하철에서 낙서화를 시작한 그는 처음에는 동물을 그리다가 동물에 가까운 네발로 기는 작은 사람을 그리게 됐고, 작업을 반복함에 따라 그 형체가 지금 해링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린아이로 변했다. 이후 수많은 공공장소에 어린이를 등장시킨 벽화를 그리거나 조각 작품을 만들었다.

그의 간결한 선과 생생한 원색,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기법들은 뉴욕 지하철에서 처음으로 대중의 관심을 얻게 되었고 1981년 토니 샤프라치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게 되었다. 해링은 이 전시를 계기로 스타 작가로 떠올랐다. 낙서화의 형식을 빌려 새로운 회화 양식을 창조해낸 그의 그림은 뉴욕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게 되었다. <라이프>지를 읽고 월트 디즈니를 TV로 보면서 우드스탁 운동을 접한 해링의 10대 시절은 이후 자신의 예술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고, 해링은 사회의 많은 무거운 고민들을 단순한 터치의 벽화로 밝게 풀어냈다. 예술은 소수의 특정 집단을 위한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믿었던 그의 철학이 작품의 성격과 위치 선정에 그대로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 <크랙은 안 돼>, 1986, 해링 (* 옆의 포즈를 취한 남자가 바로 키스 해링이다.)
▲ <크랙은 안 돼>, 1986, 해링 (* 옆의 포즈를 취한 남자가 바로 키스 해링이다.)

대표작 중 하나인 <크랙은 안 돼(Crack is wack)>는 뉴욕 이스트할렘의 버려진 핸드볼 코트 벽에 그린 그림이다. 근처 고속도로를 지나는 운전자들에게 가장 눈에 잘 띄는 위치가 이곳이었기에 해링이 선택했다. 당시 뉴욕에서 마약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그는 정부 대응을 촉구하는 마약반대 캠페인을 시작했다.(*크랙은 강력한 코카인의 일종인 마약)

단순하고 큼직한 알파벳과 해링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아이들이 등장하는 이 작품에는 두 개의 해골, 팔을 뜯어먹은 개, 거꾸로 매달린 사람을 잡아먹으려 하는 괴물 등 마약으로 인한 죽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요소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1986년 해링은 소호(SoHo)에 ‘팝 숍’를 열고 자기 작품들을 티셔츠, 장난감, 포스터 등으로 상품화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그는 상위 예술과 하위 예술의 장벽을 무너트리려 노력하였으며, 팝 숍을 개점하면서 그의 작품들은 더욱 에이즈(AIDS), 마약 코카인 등과 같은 사회적·정치적 주제를 반영했다.

극도로 단순한 터치와 극적인 주제를 결합해, 자칫 순수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림으로 이를 승화시켜 대중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 키스 해링. 1988년 에이즈 진단을 받은 그는 키스 해링 재단을 설립하여 에이즈 단체와 어린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에이즈에 대한 경각성을 일깨우는 데도 힘썼다. 해링이 에이즈 합병증으로 31세의 나이에 요절하자 <크랙은 안 돼>는 뉴욕의 랜드마크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낙서문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키스 해링의 추종자들은 ‘그래피티 아트’라는 현대미술의 한 장르를 창출해냈다.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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