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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살롱] 거장, 죽음마저 예술로 승화시키다

[백영주의 명화살롱] 빈센트 반 고흐_까마귀가 나는 밀밭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 승인 2017-03-29 11:57
▲ <까마귀가 나는 밀밭>, 반 고흐, 1890
▲ <까마귀가 나는 밀밭>, 반 고흐, 1890


[백영주의 명화살롱] 빈센트 반 고흐_까마귀가 나는 밀밭

장마가 한창인 여름이면 고흐를 떠올린다. 그가 그맘때쯤에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폭풍이 오기 전 어둑한 하늘이 그의 작품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고흐는 말년에 변화무쌍하게 소용돌이치는 대기와 구름의 흐름을 자신의 그림에 그려냈다. 마치 자신의 인생을 표현한 것처럼.

고흐는 실로 폭풍과도 같은 삶을 살았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가정교육을 받아야 했고 직장이었던 화랑에서는 해고를 당했다. 종교인을 꿈꾸며 신학교에 입학하고자 했을 때도 번번이 낙방했다. 벨기에의 광산촌에서 전도사로 활동하던 시절 목탄화를 그리며 화가가 되고자 마음먹는다. 그의 나이 26살이었다.

고흐는 1880년 브뤼셀 왕립 미술학교에서 얼마간 수학하지만 주로 독학으로 미술공부를 한다. 초기에는 <감자 먹는 사람들>과 같이 현실의 어두운 면을 강조한 자연주의적인 작품들을 그려냈다. 1886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인상주의 작품들을 접하고 또 일본의 판화 ‘우키요에’를 접하면서 고흐는 강렬한 붉은색, 초록색, 푸른색을 주로 사용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발전시켜 나간다.

그림을 그리며 어느 정도 자아의 성취를 이룬 고흐였지만 경제적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돈이 없어 끼니를 술과 커피로 때울 정도였다. 밤에는 모자 위에 촛불을 올려놓고 그림을 그려야 했다. 가난과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10년 동안 미친 듯 그림만 그렸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한때 고흐의 유작이라고 널리 알려진 그림이다. 물론 최근에 와서야 그 이후의 작품들이 발견되긴 했지만, 그림에서 느껴지는 어두운 기운이 죽음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우선 검은색과 청색의 하늘은 암울하고 불길한 느낌으로 마치 폭풍이 오기 전의 하늘같다. 요동치는 하늘아래에는 강한 붓 터치로 힘 있게 흔들리는 밀밭을 그렸다. 길은 총 세 갈래인데, 길의 표면은 포도주 빛으로 물들어서 마치 피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양쪽으로 향한 길들은 그 끝이 화면의 양 테두리에 의해 잘려 있어서 막히고 단절된 느낌을 주지만, 중앙의 길은 지평선과 맞닿아 있기에 무언가 그 끝에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고흐는 동생 테오와의 편지에서 수확하는 농부와 밀밭에서 죽음의 이미지를 엿봤다고 고백한다. 실제로 고흐는 죽기 얼마 전부터 40여점에 달하는 밀밭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 <별이 빛나는 밤에>, 반 고흐, 1889
▲ <별이 빛나는 밤에>, 반 고흐, 1889

한편 고흐가 죽기 1년 전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서 그린 <별이 빛나는 밤에>는 앞의 그림보다 밝은 느낌을 준다. 어슴푸레한 새벽, 샛별이 빛나는 하늘이 영롱하다. 별빛이 소용돌이치는 밤하늘을 표현하기 위해 점선을 이어 그렸다. 그림 왼쪽에 불길하게 일렁이는 검은 불꽃은 사이프러스 나무다. 사이프러스는 죽음과 애도를 뜻한다. 고흐는 죽음을 통해서만 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편지에 적은 바 있다. 마을에 있는 교회 첨탑이 별에서 한참 모자라지만 죽음은 별 가까이 있는 것이다.

고흐는 동생과 주고받은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잃어버린 지난 시간을 만회하려면 남들보다 더욱 열심히 그림을 그려야겠지.” 그는 그 말을 증명하듯 골방에 틀어박혀 10년 동안 그림만 그렸다.

정신병과 가난과 불확실한 미래와 싸우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던 그의 10년. 고흐의 10년 동안의 투쟁은 그의 그림과 편지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흐드러진 밀밭의 거친 붓터치와 소용돌이치는 하늘의 움직임은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천재 고흐가 바라본 세상의 마지막 풍경은 아니었을까.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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