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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김호택 국제로타리 지역재단 코디네이터(RRFC. rotary regional foundation cordinator)

한성일 기자

한성일 기자

  • 승인 2017-06-29 15:59

신문게재 2017-06-30 22면



2017 국제로타리 애틀랜타 세계대회 다녀온

김호택 국제로타리 지역재단 코디네이터(RRFC. rotary regional foundation cordinator)를 만나다



김호택 국제로타리 지역재단 코디네이터(RRFC. rotary regional foundation cordinator)가 지난 6월11일부터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국제로타리 2017 세계대회를 다녀왔다. 이에 김호택 국제로타리 지역재단 코디네이터로부터 이번 세계대회의 이모저모를 들어보았다.



-이번 국제로타리 애틀랜타 세계대회에 참가하게 된 배경은?

▲이번 세계대회의 개막식에서 폐막식까지 모두 참관했는데 지난 2016년 서울 세계대회에서 라빈드란 회장의 2nd 에이드로 함께하면서 세계대회를 재미있게 경험했던 추억이 있어 아내와 함께 참가하게 됐다. 올해는 특히 지역재단 코디네이터(RRFC. rotary regional foundation cordinator)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되면서 조금이라도 공부가 될 것 같아 시간을 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국내 최초로 국제로타리 회장을 지내신 이동건 회장님과 문은수 이사님, 윤영석 재단이사님이 단상에서 멋진 모습으로 손을 흔드는 장면이었다. 한국로타리 일원으로서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꼈다.

-존 점 국제로타리 회장은 이번 세계대회에서 어떤 이야기를 했나?

▲1950년대 소아마비가 기승을 부릴 때 예방접종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아이들이었다. 소아마비가 퇴치된 이후에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다. 아인슈타인이 13살 되는 해에 친구가 아인슈타인에게 오케스트라를 보여준다. 모차르트를 연주하는 장면을 보고 아인슈타인은 바이올린에 매료된다. 그리고 너무나 열심히 바이올린을 연습한다. 아인슈타인이 나중에 나이 먹었을때 기자들이 그가 쌓아 올린 과학적 업적에 대해 물어보면 아인슈타인은 엉뚱한 대답을 들려준다.‘나는 바이올린 없이는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우리에게 로타리는 ‘아인슈타인의 바이올린’이 되어야 한다.

자메이카는 최저임금도 안되는 주당 50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다. 차타누가 클럽에서 레이저수술이 가능한 안과병원을 자메이카에 만들어 주었고, 돈이 없어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들의 삶이 바뀌는 것을 보았다.

과테말라에서는 일리노이주 로타리클럽이 엑스레이를 기부했다. 넘어져 뼈가 부러지면 트럭에 싣고 다른 먼 병원으로 보내야 했던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우간다 캄팔라에는 로타리가 제공한 혈액은행이 설립됐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이다.

1985년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소아마비를 없애겠다는 약속을 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16억 달러를 모금해서 소아마비 박멸을 위해 사용했고, 2017년에는 단지 5명의 환자만 발생한 상태여서 대단한 희망을 갖고 있다.

-이번 세계대회의 본회의 내용을 소개해주신다면?

▲우리 로타리는 방관자나 소비자가 아니라 분쟁예방, 전염병 예방, 평화 증진을 위해 열정을 갖고 세상을 바꾸어나가는 양심있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 중 하나는 ‘기술은 연결시켜야 더 큰 힘을 낸다’는 것이다. 로타리 봉사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을 봉사자로 바꿀 수 있는 힘을 함께 가져야 더 큰 봉사를 이룩할 수 있다.

현재 ‘로타리 센트럴’과 ‘마이 로타리’를 개조중인데 7월 전에 마무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스스로 시행한 봉사의 스토리를 널리 알리고 다른 클럽과 지구에서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자료와 경험을 제공하고 스스로의 봉사를 홍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로타리는 지난 해에 소아마비 박멸을 홍보하는 노력이 인정되어 ‘실버 앤빌 어워드’를 수상했다. ‘실버 앤빌 어워드’는 홍보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린다.

-이번 세계대회에서 빌 게이츠 회장이 기조연설을 했다던데 빌 게이츠가 한 말을 들려준다면.

▲소아마비 박멸을 위해 내가 기부는 하지만 이 원대한 사업은 로타리안들이 나서서 직접 행동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의 노력은 지난 30년 동안 소아마비 걸릴 사람 1600만명을 건진 것이라는 통계가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75억 명 인구 전체를 대상으로 제로 폴리오를 만들어야 했고, 전쟁지역과 오지에도 여러 차례의 백신을 주입해야 하는 어려움이 커서 소아마비 박멸은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정치적인 어려움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이해하기 시작해 백신 접종이 가능해졌다.

나이지리아에서는 2년 동안 없어진 환자가 다시 발생해서 우리를 실망시키기도 했지만 나이지리아 정부의 신속한 대응을 통해 소아마비를 잠재우는데 성공했다. 그동안 소극적이거나 적대적이었던 종교지도자들의 동참도 큰 힘이 됐다.

매년 20만명의 마비환자가 발생하는데, 이들 중 소아마비에 의한 마비인지를 확인하고 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는 다른 감염성 질병도 찾을 수 있고 보건요원을 훈련시키는 것도 가능하게 되면서 에볼라를 비롯한 다른 무서운 질병을 예방하고 조기 발견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됐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미국은 해외원조를 줄이려 하고 있는데, 미국의 전체 예산 중 해외원조에 사용되는 금액은 불과 1% 미만에 불과하다. 미국으로서는 큰 영향을 미칠 예산이 아니지만 원조를 받는 다른 나라로서는 엄청난 상처가 될 것이다. 결국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트럼프는 알아야 할 것이다.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국대사는 어떤 말을 했나.

▲해방 직후 대한민국 건국 전후에 CIC 정보요원으로 한국에서 활동했는데, 당시의 내 임무는 대통령이 될 사람의 암살을 저지하는 일이었다. 1948년에 이승만 대통령이 당선된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 한국의 성장은 기적이다. 그리고 이 엄청난 한국의 성장은 나에게도 커다란 자부심이다. 그 때의 경험으로 나는 한국과 사랑에 빠졌다. 한국과의 70년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귀국해서 학업을 마치고 1959년 결혼한 후에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연세대 캠퍼스에서 교수로 활동했다. 주말마다 세브란스 의전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펼치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이들과 서로 영감을 주고 받으면서 독일 정부가 폭스바겐 앰뷸런스를 기증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1993년에 한국 대사로 부임하면서 ‘홈 커밍’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엄청난 발전에 놀랐다.

얼마 전 키신저 등의 인사들을 만나 “6자 회담을 재개해야 하고, 중국과 미국의 협력이 중요하다. 그래야 남북대화가 시작된다”고 조언했다. 관건은 중국을 설득하는 것이다. 사드 해체는 북한 핵 포기 이후라야 하고, 이미 비공식적으로 이런 시도가 시작되었다고 짐작한다.

-고액기부자 리셉션 이야기를 들려달라.

▲고액기부자는 10,000$ 이상을 로타리에 기부한 사람들의 모임으로, 기부액에 따라 다시 레벨을 나누는데, 나는 그 중 제법 높은 급수인 레벨4에 해당한다. 얼추 1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삼삼오오 대화를 나눴다. 미국식 파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는 어색한 자리였지만 포도주 한 잔에 금새 친해질 수 있었다. 캘리포니아 의대 안과교수 부부와 해군 장교 은퇴 부부를 만났는데 이중 해군장교는 현역 시절인 1991년 한국을 방문한 경험이 있고, 서울과 부산을 알고 있다고 했다. 우선 로타리와 관련된 얘기를 하다 보니 가까운 대화를 할 수 있었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바로 북한 핵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나에게 북한 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길래 우리에게는 이런 상황이 50년째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무덤덤하다고 했더니 이해한다면서도 미국인들은 ‘김정은과 북한’에 대해 대단히 우려스러운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EPNZC(소아마비 박멸 코디네이터)로 3년 간 일하면서 소아마비 백신이 개발되던 1950년대의 상황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는데, 돈 만지고 악수하는 것조차 무서워하던 공포의 시기가 있었다. 백신이 개발되자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와 울었다는 기사도 보았다.

두 시간 정도 대화하고 나니 처음의 어색함은 온데간데 없고, 헤어지는 것이 서운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렇지만 안되는 영어를 알아듣고 영어로 내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다 보니 머리에서 쥐가 나는 것 같은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대화가 끝난 뒤에 알게 되었다.

대담, 정리 한성일 제2사회부 부국장 hansung007@



-김호택 국제로타리 지역재단 코디네이터는 누구?

▲09-10 국제로타리 3680지구 총재

11-14 Zone 9 ARC(Assistant Rotary Coordinator)

14-17 한국로타리 EPNZC(End Polio Now Zone Coordinator)

17- 한국로타리 RRFC(Rotary Regional Foundation Coordinator)

2011년 Aide of RI President Kalyan Banerjee

2012년 국제로타리 3620지구 RI 회장 대리

2015년 국제로타리 3740지구 RI 회장 대리

서울 세계대회 K. R. Ravindran 회장 Aide

재단 기여 : Level 4 관명장학의 인

학력 : 경기고등학교 졸업, 연세대 의대 및 동 대학원 졸업

일반 경력 : 삼남제약(주) 대표이사

금산 연세소아과의원 원장

금산문화원장 역임

충남 역사문화연구원 이사 역임

연세대 의대 외래 정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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