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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는 삶의 축] 219. 저녁놀

여과(濾過) 장치 부재 단상

홍경석

홍경석

  • 승인 2017-08-16 00:01


정기구독 중인 신문에 <별별다방으로 오세요>라는 코너가 있다. 여기서 얼마 전 가슴 아픈 사연과 만났다. 내용인즉슨 스물 둘 어린 나이에 열 살 이상 나이차가 나는 사위와 결혼한 딸이 화두였다.

결사반대를 하려다가 딸의 자존심을 고려하여 허락했다. 그러나 우려는 현실이 되었는데 그건 짧았던 연애 기간에는 몰랐던 사위의 폭력적인 성격이 결별의 단초였다. 이혼 이후 딸은 공부에 매진했고 늦게나마 본인이 원하던 일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먹지도 못하는 술을 잔뜩 먹고 딸이 친정엄마에게 토로하길 “자식을 버리고도 이렇게 살아지는 게 기막히다!”라고 했단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동병상련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누구나 가슴에 숨겨둔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이순이 코앞인 지금껏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 한다. 이는 나의 생후 첫돌 무렵 생모가 가출한 때문이다. 아무리 선친의 ‘주폭’(음주폭력)이 원인이었다곤 하되 그야말로 핏덩어리에 불과한 어린 자식까지 버리고 떠났대서야…….

그래서 지금도 나는 ‘어머니’를 떠올리면 불쾌함의 극치와 함께 그로 말미암아 너무도 일찍 세상을 버린 아버지가 오버랩 된다. 어머니의 부재(不在)로 말미암은 비극은 상당했다. 반에서 줄곧 1~2등으로 질주했건만 중학교조차 갈 수 없었다.

숙부님이 주신 중학교 등록금마저 술과 바꿔 드신 아버지를 원망하기엔 당시가 너무도 살기가 힘들었다. 나라도 나서서 벌지 않으면 우리 부자는 굶어죽기 딱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소년가장이 되어 사통팔달의 고향역 앞에서 신문팔이와 구두닦이를 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몰려든 뇟보와 발김쟁이들의 횡행으로 인해 살기다툼은 치열하기 짝이 없었다. 설상가상 툭하면 두들겨 패는 사복개천의 어리보기들도 다반사였다. 그들에게 맞는 게 억울하여 밤마다 복싱을 배웠다. 덕분에 이후론 도리어 내가 그들을 굴복시켰다.

작년에 절친한 죽마고우의 모친께서 별세하셨다. 생전에 마치 친아들인 양 나를 끔찍이 아껴주셨기에 장례 내내 빈소를 지켰다. 그 친구가 얼마 전 공사장에서 추락 사고를 당했다. 꼼짝도 못 하는 그 친구를 문병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제어하기 힘들었다.

차마 입 밖에 내놓진 못 했으되 ‘만약에 저 친구의 모친께서 살아 계셨더라면 평소 ‘아들바보’였던 당신께선 과연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저 친구의 간병까지를 마다치 않으셨을까!’ 라는 당연한 명제(命題)가 먹구름으로 다가왔다.

차압당한 모정까지를 차지할 속셈(?)에 또래들보다 비교적 이른 스물셋에 결혼했다. 이듬해 아들을 보았는데 녀석이 어느새 서른다섯이니 세월처럼 빠른 게 또 없다. 대저 자신이 당한 고통과 상실은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거울로 작용하는 법이다.

내가 누리지 못한 모정(母情)과 부정(父情), 그리고 불학(不學)의 아픔을 아이들에겐 절대로 접근조차 못 하게 하리라 작심하고 철저한 행동에 나섰다. 덕분에 두 아이는 자타공인 우리나라에서 제일로 쳐주는 직장에 근무 중이다.

반면 내가 어머니를 미워하는 마음은 요지부동이다. 그 마음이 다소나마 희석된 이유는 <별별다방으로 오세요>라는 기사 외에도 최근 관람한 방화 <택시운전사>의 영향이 있었다. 여기서 홀아비인 택시 운전사 김만섭(송강호)은 딸 하나만 바라보며 사는 ‘딸바보’ 아빠다.

“가까운 사람을 미워하는 일은 인생에서 가장 소모적인 일이다. 조금만 멀리 보면 그 사람에게도 반드시 장점이 있다”는 말이 있다. 허나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다만 미움을 억지로라도 납득(納得)하는 과정으로 치환하자면 당연히 그에 합당한 여과(濾過)의 과정을 거쳐야 옳다.

한데 그 여과의 장치가 현재로선 없기에 답답한 노릇의 계속인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완전히 소멸될 날은 정녕 언제가 돼야만 비로소 가능할까?! 전영록은 <저녁놀>에서 “이 어둠이 오기 전에 나를 데려가 주오~ ”라고 했다.

저녁놀이 지면 땅거미가 찾아온다. 저녁놀이 지면 밖에서 놀던 아이는 당연히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어머니도 없는 집은 돌아갈 까닭도, 심지어는 명분마저 상실하고 만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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