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밴드
  • 트위터
  • 페이스북
  • 검색
  • 전체메뉴

실시간뉴스

닫기

(6) 판화가 이종협씨

판화공방 15년… 나는 새로움을 새긴다

입력 2004-05-12 00:00

▲  판화가 이종협씨    사진=박갑순기자
▲ 판화가 이종협씨 사진=박갑순기자
“유화 중심의 교육 잘못 판화 장식적 요소 강해”
대학시절 정장직. 정길호 등 모임 결성해 퍼포먼스 시도
‘자연’ 화두… 비구상 작품 전개 “공방서 작가 양성. 대중화 앞장”



대전시 중구 대흥동 452-43번지, 대전판화공방이 바로 판화가 이종협씨(51)의 작업장이다.

이 건물 2층~4층까지 이종협씨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판화 작업장인 것이다. ‘판화가 유화보다는 느낌이 다소 가볍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유화 중심의 생각부터가 잘못됐다’고 언성을 높인다.
“그림을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회화의 기준이 유화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유화 중심의 잘못된 교육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은 컴퓨터나 첨단 기기의 발달로 예술도 첨단화돼 가는 추세예요. 예를 들면 캔버스가 아닌 매체에 표현되는 예술도 흔하다는 것이지요.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아직도 그림하면 유화라는 것은 낡은 생각일 수 밖에 없지요.”

이종협씨는 판화가 일반인들에게 뿌리내리게 된 것까지 설명하고 나섰다.
그는 “오늘날 현대화된 건물 내부에 걸기에 적합한 문화적 특성을 지닌 장르의 그림이 바로 판화”라며 장식적인 요소가 강한 판화의 장점을 설명한다.

이처럼 판화에 빠져있는 이종협씨가 처음 판화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일본에 유학하면서 부터다. 유학 이전의 그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변화의 회오리 속에 휩쓸려 다니던 시기였다.

지난 1977년 한남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할 때까지 그는 실험적인 예술활동을 전개했다. 대학시절 비구상계열의 그림을 그려온 그는 정장직, 정길호 등 또래들과 어울려 ‘19751225’라는 모임을 결성해 퍼포먼스를 시도하기도 했다.

“캔버스에서 벗어난 예술활동을 전개하는 등 행위예술을 선보인 것이지요. 당시 퍼포먼스라는 단어조차 등장하지 않았던 시절에 퍼포먼스를 전개한 것입니다. 일종의 해프닝인 셈이지요.

대전역 광장에서 종이를 일렬로 세워놓고 바람에 의해 쓰러지는 현상들을 실험하기도 했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하는가 하면 역전 파출소에서는 ‘이상하다는 신고가 들어왔으니 그만두라’고 했어요. 당시는 박 정권의 강압시대 아니었습니까.”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새로움을 예술로 끌어들이려는 실험을 전개한 것이다. 이들의 이러한 실험정신은 결국 금강현대미술제나 야투 등으로 이어져 후배들에 의해 오늘날에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대학시절 이 같은 실험 예술을 통해 변화를 추구했던 이종협씨는 대학 졸업 후 3년 가까이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에 대한 욕구는 타오르는 활화산과 같았다. 결국 교사 직을 그만두고 책과 붓을 잡은 그는 지난 1983년 홍익대에서 1년 가까이 서양화를 공부한다. 그러나 이 같은 틀에 박힌 공부도 그에게는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는 ‘이것이 내가 배워야 할 그림공부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되새김질한다. 그는 결국1985년 일본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판화에 빠져든다. 캔버스에서 벗어나려던 그의 새로움을 향한 실험예술은 판화라는 장르에 귀착하는 셈이다.







일본 다마(多摩) 미술대학원에서 판화를 공부한 그는 지난 1990년 귀국한 후 대전시 동구 중동에 판화공방을 열었다. 당시만해도 대전지역에서는 생소한 판화공방임이 분명했다. 그로부터 1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대흥동의 새로운 공방에서 판화를 알리는 전도사처럼 우뚝 자리한 것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이종협씨의 작품 경향도 적지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초기에는 인체를 주로 표현했다. 자아에 대한 생각 또는 인간에 대한 생각들을 모티브로 사람의 몸을 형상화했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자연의 생성과 소멸이 주된 모티브로 작용했다. 빌딩 정원에서 바라다본 하늘 풍경을 작품화한 ‘SKY IN THE GARDEN’이 바로 이 당시의 작품 가운데 하나다. 그의 최근 작품 성향은 비구상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처럼 구상, 비구상의 범주를 넘나들지만 ‘자연’이라는 화두를 늘 머리 속에 담고 작품활동을 전개한다는 것.
이종협씨는 판화에 대해 ‘매력 있는 장르’라고 강조한다.

“유화에서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일반인들도 판화를 단순히 ‘찍는 그림’ 정도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할 거예요. 목판이나 동판 등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판화의 전부지요. 그러나 판화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분명 달라요. 판화에 대한 인식부터가 달라져야 해요.”

1990년대 초반만해도 판화는 경기 상승에 때맞춰 호황을 누렸다. 제법 팔려나갔고 특정 작품을 주문하는 사례도 적지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일반인들이 어떤 류의 판화를 좋아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던 시기였어요. 특정 문양의 판화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니까 자꾸 같은 류의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도 생기더라구요. 그러나 인기만을 생각할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도 않아요. 경기가 안 좋으니까 제대로 팔리기나 합니까. 다만 작품 활동이나 열심히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일에 대한 그의 일면을 드러내는 말이다. 자신의 판화공방과 관련해 그는 “판화 작가를 양성하는 한편 판화를 자연스럽게 일반인에게 알리는 작업장”이라고 소박하게 소개했다.



1954년 대전 출생
1977년 한남대학교 미술교육과 졸업
1990년 일본 다마(多摩) 미술대학원 졸업
1980년 제 1회 개인전(중구문화원)
1889년 제 2회 개인전(동경)
1998년 대전현대판화제(대전 시립미술관)
1999년 한국현대판화 스페인 순회전 (스페인 국립판화미술관)
2000년 대전광역시 미술대전 초대작가전 (대전 시립미술관)
2001년 서울판화미술제(서울 예술의전당)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심사위원 역임 현 대전광역시 미술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 운영위원 한남대학교 사회문화과학대학원 조형미술학과 겸임교수
▲
▲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인기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