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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의식

입력 2017-08-14 16:35
신문게재 2017-08-15 22면

▲ 이정호 목원대 교수
▲ 이정호 목원대 교수
일본은 맑은 날씨면 부산에서 대마도가 보일 정도로 지리상으로 가깝다. 그러나 양 국민 간의 마음의 거리는 이에 비할 바 없이 멀어 양 국민 사이 국민 선호도는 거의 하위에 머문다. 특히 아베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다.

금병동의 <일본인의 조선관>은 한국에 대한 이러한 일본인들의 의식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해서 형성됐는지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민족적 편견과 멸시의식, 침략사상은 일본의 진구황후 전설에서 시작되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진왜란을 통한 조선침략으로 실행되고, 근대에 와서 메이지 초기의 정한론을 거쳐 조선 식민지화로 이어졌다.

진구황후 전설은 8세기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記)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 정벌설을 담은 이 전설이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민족적 편견과 멸시의식, 침략사상의 근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은 진구황후 전설을 교과서에 실어 학교에서 가르치면서 조선이 일본의 속국이었다는 일본 전통적 조선관을 일본인의 의식에 심어주고 있다.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어 일본 전국시대를 최초로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인의 의식에 깊숙이 자리 잡은 신국(神國)의식을 바탕으로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에 대한 침략의식을 구체적으로 실행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전개된 도쿠가와 막부에서는 국학이 크게 유행하였다. 국학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사상과 결합하여 일본인의 의식에 조선에 대한 멸시의식을 깊게 심어주었다. 이는 다시 도쿠가와 막부 말기부터 발흥하는 정한론(征韓論)의 근거를 제공하였다. 정한론은 다시 일본의 한국 식민지화를 합리화하는 ‘일선동조론’으로 이어져 조선 침략과 식민지화를 통해 구체적으로 완성되었다. 이러한 조선관은 식민시대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일본인의 의식에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요시다 쇼인은 메이지 연간을 통해 활약하면서 조선침략의 구체적 실행에 대한 정한론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진구황후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뛰어넘을 것을 주창하면서 조선을 정복하자는 사상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30세에 사형을 당한 혁명가 요시다 쇼인의 정한론은 기도 다카요시,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토 아리토모, 쇼네 아라스케 등 제자들에게 이어지고 실행되었다. 그의 제자들은 막부 말기부터 시작하여 메이지 신정권의 중심에서 국정을 책임지는 역할들을 맡게 된다. 이 중 메이지 유신의 3걸 증 하나인 기도 다카요시는 권력의 중심부에서 조선침략을 기획하면서 내정불안을 정한의 구체화를 통해 없애고자 하였다.

총리대신이 된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토 아리토모는 조선침략을 실현하고 조선의 약탈정복에 심혈을 경주한 정한론의 실현자들이었다. 특히 이토 히로부미는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기도가 사라진 뒤 일본 정계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는 메이지 정권이 탄생하자 조선정복을 위한 정한론을 제시하고 실행하면서 메이지 전 시기 동안 조선의 식민지화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다가 안중근의사에 의해 인생을 마치게 된다.

야마가토 아리토모는 메이지 초기부터 군사적 측면에서 조선침략을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하여 완성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토 히로부미를 뒤이어 제2대 통감이 된 쇼네 아라스케 또한 조선약탈에 몰두하였다. 또 메이지유신의 성공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이고 다카모리는 메이지 정권에서 정한론을 가장 열심히 주창하고 입안한 상징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메이지 시대의 교육자, 문필가, 계몽사상가로서 일본 근대화론을 제시하였다. 그 또한 수많은 저술을 통해 정한론을 주장하였다.

이들을 포함한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대부분의 사람이 일본의 근대화와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우선 조선을 정복해야 한다는 ‘정한론’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조선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조선인은 교활하고 독립할 능력이 없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일본인들의 조선인에 대한 의식의 중심에는 멸시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근래에도 가끔 나타나는 일본 정치인의 망언과 역사왜곡,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반성 없는 일본정부 행태 속에 이러한 의식이 일본인에게 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에게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는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마음으로는 먼 일본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극일(克日) 할 수 있고 더욱 세계를 향해 번창해 갈 수 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가 힘써 일본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정호 목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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