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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 우연 같은 필연, 대한민국의 독립

입력 2017-08-15 12:17
신문게재 2017-08-16 22면

▲ 강윤진 대전지방보훈청장
▲ 강윤진 대전지방보훈청장
1945년 7월 26일 미국, 영국, 중국은 ‘포츠담 선언’에서 대일(對日)처리 방침을 명시하고 아울러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다. 일본이 이를 묵살하자 미국은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소련도 일본을 상대로 만주에서 일제히 공격을 한다.

이로 인해 일본 군부는 항복을 결의하고 8월 15일 일본왕은 국민에게 항복을 방송했다.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이한다. 미국이나 여러 강대국에 의해 그냥 얻어진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1943년 11월 27일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연합국의 지도자인 미국의 루스벨트, 영국의 처칠, 중국의 장제스가 모인다. 이들은 12월1일 카이로 선언을 발표한다.

카이로 선언은 일본 문제에 관한 것으로 주로 영토 문제에 대해 연합국의 방침을 명백히 밝힌 것이다. 그 내용은 1차 세계대전 후 일본이 빼앗은 태평양제도에서의 박탈, 만주·대만 등 중국에 반환, 모든 점령 지역으로부터 일본세력의 구축(驅逐)을 담고 있다.

이 회담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나라의 독립문제가 최초로 논의된 것이다. 또한, 논의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적절한 절차를 거쳐 한국에 자유와 독립을 줄 것을 결의한다” 고 선언한다.

이것은 당시 수많은 식민지국들이 있었으나 유일하게 대한민국의 독립만을 보장받은 역사적 큰 사건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만이 어떻게 독립을 보장받았을까? 그냥 우연인가? 아니면 필연일까?

국제사회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기적이며 전투적이다. 제 세계 1차 대전은 제국주의 열강이 식민지 등 세력을 넓히고자, 세계 2차 대전은 일본, 독일, 이탈리아의 국가주의적 전체주의 파시즘이 자국만을 위한 것에서 시작됐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국제사회는 자국의 이익을 위한 전쟁터이다. 당시 카이로선언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이 선언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며 되짚어봐야 할 사안이다.

1932년 당시 중국은 반일감정이 고조되었는데 상하이에서 일본인 승려들이 중국인들에게 폭행을 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으로 일본거주민들과 중국인들이 대치하는 일이 벌어지고 군사적 충돌까지 가게 된다.

이것이 1월28일 발발한 상하이사변(1·28사변)이다. 이 전쟁에서 중국은 일본에 항전하였으나 만주와 이 사변에서 연달아 패퇴하고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짓밟히는 등 민족적·국가적 수치를 당한다.

이리저리 일본에 분노하던 중국인들에게 놀라운 소식이 전해진다.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과 상하이사변 전승기념식이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열리자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가 단신으로 적군의 심장부에 들어가 폭탄을 투척해 일본의 총사령관인 시라카와 요시노리 등 군부를 처단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세계는 깜짝 놀라고 중국인들은 100만 대군도 못한 일을 대한민국의 한 청년이 해냈다며 놀라워하고 장제스 또한 감동하며 감사하게 된다. 이 독립운동가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윤봉길 의사다.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는 임시정부와 중국의 장제스가 협력하는 계기가 된다.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의 주요인사는 장제스에게 대한민국의 독립을 계속 주장하며 카이로회담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주창해 줄 것을 건의한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독립은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에 의한 세계정세에서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오직 나라의 독립만을 위해 애쓰신 윤봉길 의사와 같은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광복절이 있는 8월, 윤봉길 의사의 유서를 기억하면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힘쓰신 숭고한 독립투사의 얼굴들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한다.

윤봉길 의사는 유서에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동포여,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번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백 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이 기회를 택했습니다. 안녕히 안녕히들 계십시오”라고 적었다.



강윤진 대전지방보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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