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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 울음이 노래가 되는 삶

김정숙 충남대 교수

정성직 기자

정성직 기자

  • 승인 2017-08-22 10:09

신문게재 2017-08-23 22면

▲ 김정숙 충남대 교수
▲ 김정숙 충남대 교수
늦여름 장대비가 쏟아지고 날이 개자 매미소리가 수직으로 허공을 가른다. 땅 속 깊은 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생의 한때 자신의 존재를 목청껏 알리는 그 소리를 듣다 보면 가슴이 짠해 온다. 요즘 우리 사회에도 참 많은 소리들이 넘쳐나고 있다. 비정규직, 인권, 성소수자,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들을 포함해 힘겹고 아프고 불안한 사람들이 마른 울음을 토해내고 있다. 굉음과 예측하지 못한 소리들은 스트레스를 일으킨다.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이웃 간 갈등이 빚어지고, 비행장 주변에서는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가축들은 이상 반응을 보이거나 유산을 한다. 소리는 귀를 통해 바깥의 어떤 자극을 알아차리는 감각이다. 소리와 밀접한 우리들은 어떤 소리를 접하며 사느냐가 그만큼 중요하다.

소리는 공기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일상과 삶터가 어떤 소리들로 이루어졌는가는 육체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안정 그리고 생활의 질과도 연결된다. 에모토 마사루의 책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물에 사랑한다, 고맙다와 같은 다감한 소리를 들은 물은 꽃이나 보석과 같은 아름다운 결정이 만들어졌는데, 반대로 밉다, 화난다 등의 분노의 소리를 들은 물은 결정이 깨졌다고 한다. 의사과학적 측면이 있지만, 소리는 분명 대상을 아름답게도 파괴하기도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다세대주택 일층에 세 들어 살 때의 일이다. 자정이 되면 밖에서는 어김없이 음식물 용기를 비우는 소리가 났다. 미화원분들이 일하면서 내는 소리다. 새벽 네 시쯤엔 바쁘게 계단을 오르내리는 신문배달원의 발소리가 들리곤 했다. 때로 과일과 생필품을 알리는 트럭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도 들리고, 한겨울에 찹쌀떡을 외치는 아르바이트 학생도 있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술 한잔 기울인 아저씨의 '아빠의 청춘' 한 자락이 구슬펐고, 유아원을 가기 위해 맞벌이 엄마아빠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오는 네 살배기 아이의 종알거리는 목소리가 귀여웠다. 사계절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히 내는 소리들이 고맙고 아름다웠다.

윽박지르고 무시하고 편 가르는 고함으로부터 어떻게 이 소중한 소리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시인 김수영은 '금잔화(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폭포(瀑布)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곧은 소리는 곧은/소리를 부른다.'(<폭포>)고 노래한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주시민으로 살아갈 권리와 의무가 있다. 부당한 일이 있거나 비인간적인 상황에서는 사실을 곧게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사회구조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스스로가 주체적인 소리를 낼 때 비슷한 경험을 가진 소리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보다 더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힘과 용기를 내주어야 한다. 언론의 회복과 참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이유이다. 언론은 시대의 부조리를 알리고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진실의 파수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신화'에 '세이렌'이라는 바다의 요정이 있다. 여자의 머리에 새의 몸을 가진 바다 요정은 지중해 섬에 살면서 감미로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유혹해 잡아먹는다. 구급차나 긴급출동차, 민방위훈련 등의 '사이렌'은 바로 이 요정의 이름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되도록 우리 생활에서는 긴급 '사이렌'이 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대원들을 세이렌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게 리라를 연주하며 부른 오르페우스의 '노래'가 울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으로 내려앉길 소망한다.

오늘 우리가 찾아야 할 소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소리는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생의 박동이자 시그널이다. 울음이 노래가 되는 삶! 사이렌과 노래를 구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고, 소리 내지 못 하는 존재들의 침묵까지 들어야 진정한 경청이다. 귀뚜라미가 “나 여기 살아있다”고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나희덕, <귀뚜라미>)이고 싶다고 타전하는, 가을의 문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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