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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다이아몬드의 아픔

입력 2017-09-17 12:10   수정 2017-09-19 09:35

강윤진청장
강윤진 대전지방보훈청장
다이아몬드(Diamond)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가장 인기 있는 보석이다. 과거에는 왕과 귀족의 전유물이었으나 19세기 후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규모 다이아몬드 광산의 발견과 현대적인 기술로 많은 양이 채굴되면서 대중화됐다.

현대의 수많은 다이아몬드는 아프리카에서 채굴되며 생산량 15위권 내의 국가 중 9개국이 아프리카다.

영원한 사랑, 행복을 의미하는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역설적으로 아프리카에서는 ‘피의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라 불린다. 다이아몬드에 피를 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프리카 국가들은 1960년대 이후 유럽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부족이나 인종 갈등으로 인한 정치적 불안과 계속되는 내전, 만성적 가뭄과 기아, 질병 등으로 지금까지 고통을 안고 있다.

특히,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은 다이아몬드와 그 외의 수많은 천연자원의 이권전쟁으로 콩고내전, 시에라리온 내전 등에서 수백 만명의 사망자와 난민을 만들었다.

이면에는 아프리카의 천연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열강들의 경쟁도 포함된다. 아프리카는 식민지 당시와 달라진 것이 무엇일까?

아프리카 한 소년은 말한다. “내전이 일어나면 난 다시 반군에 합류할 수밖에 없어요. 오랜 전쟁으로 배우지 못했고, 아무런 희망도 없어요”라고….

그들에게 나라와 국가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필자는 아프리카를 보면서 인도의 몰락을 떠올려 본다. 그 커다란 인도를 호령하던 무굴제국이 일개 동인도 회사에 의해서 영국의 식민지라는 단추를 열어주었는가를.

당시 인도는 오랜 역사와 커다란 영토만큼이나 다양한 종교, 토족세력, 카스트 제도와 같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들을 갖고 있었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토족 세력은 이슬람교와 힌두교 등 수많은 종교와 자신들만의 제도와 문화로 분열돼 있었다. 갈등과 내분이 끊이지 않았다. 필요에 의해 연합하거나 주종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민중은 나라에 무감각했으며 방대한 말단을 형성하고 있었다.

영국은 그것을 교묘히 파고들어 이용했다. 지금의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갈라지게 했다.

인도 식민지 흐름에 굉장히 중요한 사건인 플라시(Plassey)전쟁을 예로 든다.

영국군 3000명과 벵골지역의 태수군은 7만여 명의 싸움. 그마저도 영국군의 주력(主力)은 고용된 인도인 병사였다.

이 전쟁에 인도는 패하고 만다. 태수의 부하 참모장들이 영국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제대로 전투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부하들은 태수를 붙잡아 처형을 한다.

인도 식민지의 원인은 근대적 군사 기술의 결여나 미약함이 아니다.

국민이 한 민족이라는 의식과 외래세력에 대한 대항의식 결여 때문이다. 결국, 열강에 의해 풍부한 인력과 자원을 빼앗겼다.

국민의 국가에 대한 인식과 국민통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고민하게 된다. 어떠한 위기에서도 극복하는 강한 나라를 만드는 힘의 원천일 수 있어서다.

국민통합의 출발점은 국가보훈이라고 필자는자신 있게 말한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밑바탕에는 독립 운동을 통한 광복, 6·25전쟁, 월남전 참전, 민주화 운동 등 나라를 지키고 경제발전을 위해 희생·헌신한 분들이 있었다.

국가보훈은 독립-호국-민주로의 시대정신을 담은 나라사랑의 길로, 다양한 역사가 융합돼 서로 존중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가보훈을 발전시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분들에 대한 감사와 예우하는 사회적 풍토가 있어야 한다.

필자는 “애국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모든 것. 국가를 위해 헌신한 한분 한분이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강윤진 대전지방보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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