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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 문화칼럼]역사(가야사)로 지역감정 어떡해?

입력 2017-09-27 11:06   수정 2017-09-27 13:24
신문게재 2017-09-2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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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 논설실장
가야 고분군을 놓고 28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학술대회가 열린다. 가야사 복원 소식은 일단 반갑다. 낙동강 하류가 본토지만 진안, 장수, 임실, 남원, 구례, 남원 등 섬진강, 광양만과 순천만, 그리고 금강 일부까지 꽤 광폭이다.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같은 남원이라도 초촌리는 백제 계통, 월산리는 가야 계통이다. 양쪽 다 갖춘 두락리에선 무령왕릉 금제 목걸이와 기법이 동일한 은제 목걸이가 나왔다. 남원과 여수에서 고령계 유물을 보고 순천 가서 대가야 형식 고분을 보고 크게 놀랐다면 그 이유가 고구려, 신라, 백제의 3국 체제에 길들여진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역사적으로 가락국(가야)에 빚졌다. 고구려, 백제, 신라에 가야를 넣어 4국시대로 부르거나 3국1연맹시대로 불러줘야 '예의'일 것 같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도 김해, 함안, 창녕의 가야 관련 사업을 했다. 초점은 문화관광이었다. 가야사로 지역감정 허물기는 금시초문이다. 6개(삼국유사), 10개(일본서기), 24개(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소국을 근거로 경상, 전라, 아니면 충청 일부까지 가야문화권으로 묶으면 지역 통합 내지 화합의 구심력처럼 비치기도 한다.

사진
수로왕릉. 수로왕은 가락국(駕洛國) 금관가야의 시조이자 김해 김씨의 시조,
그러나 그 역사가 지금 말하는 통합의 역사였는지부터 막힌다. 정치적 역학관계 속의 가야는 백제로 기울다가 관산성 전투 이후에 신라로 기울기도 했다. 백제 개로왕 피살과 웅진(공주) 천도를 틈타 호남 지역을 지배했다면 지역통합과 무슨 연관일까. 대가야 팽창기에 공주로 천도한 백제의 남진정책과 맞닥뜨려 일전을 치른 사실까지 규명하다 보면 거꾸로 지역 기반의 대립적 관계가 부각되지는 않을까. 부질없는 생각이 든다.

진짜 위험은 그런 게 아니고 정부 설정에 맞춰 클릭하며 연구하는 자세다. 가야사는 이미 삼국유사, 삼국사기나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의 왜곡으로 심한 내상을 입었다. 고대사학계 측은 "제대로 고증도 하지 않은 채 가야사에 대해 떠드는 상황"을 불만스러워 한다. 친소를 따지면 가야연맹 중 김해는 친신라, 창원 중심의 가야 서부는 친백제로 성격이 엇갈린다. 같은 논리로, 소지역주의나 또 다른 지역패권주의로 간다면…?

물론 '가야문화권 지역발전 시장군수협의회'(거창, 고령, 고성, 광양, 구례, 남원, 달성, 산청, 성주, 순천, 의령, 장수, 창녕, 하동, 함안, 함양, 합천)와 5개 광역정부(전남, 전북, 대구, 경북, 경남)의 역사 공유 노력은 폭넓게 지지한다. 우리 역사인 까닭이다. 그러나 흥망과 성쇠가 지역감정 치유에 한 가닥 효용가치가 있어도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역사는 역시 역사다.

가야사는 520년, 권력은 유한하다. 백제와 가야를 홀대하고 신라를 띄운 박정희 역사관은 제멋대로 재단하기였다. 전두환은 상고사 강화를 지시했다. 이를 박근혜도 따라했다. 국정교과서는 3년 3개월 만에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든 '가야사'도 고증이 흐려지면 역사 도구화로 흐른다. 보여주기 정치와 행정도 위험하다. 각지에 흩어진 가야 고분군은 조선왕릉처럼 세계유산 자격이 있지만 가야를 삼남(영남, 호남, 충청)의 공통사로 승화하려면 처음도 끝도 고고학적 관점이어야 할 것이다. 권력이 역사를 장악하면 역사왜곡의 역사가 시작된다. 제대로, 역사 그대로 연구·복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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