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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학교 폭력은 모두가 피해자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학과 교수

입력 2017-09-27 22:40   수정 2017-09-28 14:30
신문게재 2017-09-29 23면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학과 교수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학과 교수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혹은 누구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학교 폭력은 마치 교사가 가해자로 인식되었고, 학부모들은 교사의 힘만 빼앗으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다. 그래도 과거에 학생들이 잘못하면 "학교 선생님께 이른다"고 엄포(?)를 놓으면 아이들이 말을 들었는데, 교사가 가해자라는 의식이 싹트면서 교사의 권위를 없애버리려고 노력했다. 80년대 초반 한 교실에 70여 명의 학생을 집어넣고 교육하던 시절에는 학생지도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아이들 이름 익히는 것도 힘들고 숙제 검사하기도 힘들었다. 그나마 그 시절에는 교사의 권위가 살아 있어서 아이들을 통제하기 쉬웠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학급에 아이들은 30명 남짓 되지만 통제하기는 그 당시보다 힘들다고 한다. 몇몇 학부형들은 교사의 권위를 빼앗으면 내 자녀들이 마음껏 권리를 주장하며 자유로운 학교생활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성인 교사의 중재능력 상실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솔직히 교사가 학생들의 협박이 두려워 자살했다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임용고시라는 어려운 과정으로 얻어낸 교사 '자리보전'을 위해서, 교사의 소신 따위는 벗어 던지라면 그리할 교사도 있을지 모른다. 아니, 오히려 '흠결 많은 제자를 꾸짖지 않고 사랑으로 감싸는 교사' 코스프레까지 할 수도 있다. 일명 '대형사건'으로 알려지기 전까지 '폭탄 돌리기'로 버티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한 모퉁이에서는 또래의 협박이 무서워서 절망과 두려움에 떨거나 세상을 등져야 하는 피해 학생들이 계속 늘어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요즘 계속해서 학교 폭력문제가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심각하게 있었는데, 다들 무시하고 있다가 요즘 대형사건이 잇달아 터지니 급기야 방송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필자가 고교 교사로 있던 시절에도 소주병 깨면서 싸우는 아들도 있었고, 도끼 들고 학교에서 난동을 부린 녀석도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교사가 소리를 지르면 고분고분 말을 듣고 도끼 내려놓았다. 요즘은 체인, 의자, 스마트 폰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폭력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학교폭력 담당교사는 테이져 건이라도 가지고 다녀야 할 판이다. 세종시에서도 모텔에서 감금하고 폭행한 사건이 있었고, 천안에서도 체인으로 협박하며 따귀를 수백 대 때린 사건이 있었다. 사진으로 보니 정말 비참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잔인해졌을까 생각하니 나라의 미래가 걱정이다. 죄의식이 없고, 오히려 폭력을 즐기는 양상이다.

어려서부터 총칼을 쥐여주고 잔혹함의 훈련으로 무장된 인간만 아니라면, 가해 학생들이 되어가는 그 '전초전(삐딱하게 앉기, 아무 데나 침 뱉기, 폭언이나 육담 하기)' 증세 단계에서 교사의 권위로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러한 권위의 직분을 부여받고도 제자의 초기 문제 현상을 못 알아보거나, 알고도 막지 않은 교사라면 '직무유기'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즉 지금의 학교 폭력 대부분은 교사의 힘으로 막아낼 수 있다고 장담한다. 다만 그 '힘'이 없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교사에게 잘못을 물을 수 있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과거의 것이 다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교사의 권위를 인정했던 시절에는 학교폭력이 이 정도로 잔인하지는 않았다. 힘 있는(?) 학부모라도 담임교사 앞에서는 순한 양이 돼야 한다. 자신이 높은 지위에 있다고 담임을 무시하고 교장실로 곧장 달려가는 몰지각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학교에 맡겼으면 학교의 처분에 따라야 한다. 학교를 믿지 못하면 어느 단체를 믿을 수 있는가. 교사의 힘을 빼앗은 결과가 오늘날 이렇게 무서운 현실이 되었다. 착한 우리 아이가 학교에 즐겁게 다닐 수 있어야 한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필자의 절친한 친구의 딸도 엄청나게 착한 아이였는데, 일진의 한 마디에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여 힘든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어렵게 극복하여 지금은 공무원을 하고 있지만, 당시 상담하던 시절을 기억하면 치가 떨린다. 우리 모두 학교 폭력의 피해자는 내 아이라는 생각으로 대처해야 한다.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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