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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창의적인 인재를 키우려면

최병욱 한밭대 공과대학장

최병욱 한밭대 공과대학장

최병욱 한밭대 공과대학장

  • 승인 2017-10-09 11:00
최병욱교수(화학생명공학과)
최병욱 교수
지난 9월 공학교육에 관여하는 국내외 학자와 기업인들이 모이는 공학교육학술대회가 제주도에서 개최되어 필자도 참가하였다. 2일간의 학술대회 기간 다양한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논문들의 주제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교육혁신, 융합교육 콘텐츠 개발, 비판적 사고 교육, 창의성 교육, 공학교육인증제도 등 새로운 교수학습법 및 교육제도에 대한 것들이었다. 이들 중 필자의 눈에 띄었던 흥미로운 논문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본 논문은 서울대 박남규 교수가 발표한 것으로 논문 제목은 '데이터로 보는 한국인의 창의성'이었다. 본 논문에서는 창의성을 발산적 사고와 수렴적 사고의 화학적 결합현상이라고 정의하고, 지난 10여 년간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등 15,000여명의 발산적 사고 능력과 수렴적 사고 능력을 평가하여 창의역량을 비교 분석하였다.

그 결과 중 하나는 나이에 따른 창의성의 변화를 분석한 것인데, 결과를 보면 평균 나이 23세 전후로 창의적 사고 역량이 정점을 찍은 이후 계속해서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특히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창의적 사고 역량이 증가한다고 하였다. 이는 우리나라가 얼마나 창의적인 국가가 될 수 있는지는 결국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약 10년의 기간 동안 우리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에 달린 것이라고 박 교수는 발표하였다.



본 필자는 이러한 연구를 자세히 살펴본 적은 없으나 충분히 동의할 만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결과를 존중한다면 우리는 심각하게 중등교육 및 고등교육을 개혁해야 할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현대식 교육이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도 필기시험 중심의 암기식 교육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창의적인 교육의 필요성은 자주 거론되기는 하였지만, 성적순으로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는 교육은 지속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박 교수의 논문의 또 다른 결과에서는 창의적 사고 역량과 성적과의 상관관계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수렴적 사고 능력에서만 상관관계 지수가 0.3정도이며 (이것도 높은 것은 아니다), 발산적 사고의 경우는 상관관계 지수가 0.3 이하로 현격히 떨어진다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시험성적으로 줄을 세우고 있으며, 계속 그러려고 한다. 고교내신 시험성적이나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학생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이 지나치게 큰 것이다. 물론 수행평가 제도 운영이나 중학교 자유학기제 등을 통하여 나름대로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들은 아직까지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그 내용도 창의성 증진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어 매우 아쉬움이 크다.

또 하나 크게 개선되어야 할 것이 상대평가 제도다. 고등학교 내신성적, 대학수학능력시험, 심지어 대부분의 대학에서 교과평가도 상대평가로 진행되고 있다. 나름대로 상대평가를 하는 이유는 충분히 제시되고 있으나, 승자보다는 패자를 많이 만들어 내는 이러한 제도는 교육적으로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즉, 상대평가에서 낮은 위치에 있는 학생이 오히려 더 뛰어난 창의성을 갖추어 본인의 창의성을 통해 사회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의 낮은 상대적 평가 때문에 아예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조차 제거당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서 태어났었다면 그는 영원한 ‘루저’로 남았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몇 년 전에 유행한 적도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가 발전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이제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이제 학령인구도 많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즉, 얼마 되지 않는 젊은 인재들로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많은 학생을 배제하면서 일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만 기회를 제공하기보다는 모든 학생을 참여시켜 그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혁신적인 새로운 교육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이러지 않고는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산업사회에서 우리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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