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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 약사 김종욱, 천천히 조금씩 오래 함께 가는 길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입력 2017-10-10 13:10   수정 2017-10-10 15:23
신문게재 2017-10-11 22면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 교수
아이 엄마가 잰걸음으로 오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고꾸라질 듯 숨 가쁜 모습이 선연했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덜컥 큰 겁이 났다. 동부이촌동 아이를 떠올리며 영신약국 약사 김종욱은 눈을 감았다. 약국 문을 젖히고 들어온 애 엄마는 날숨에 거친 말을 겨우 섞었다.

개구리처럼 뻗어 미동도 않던 아이가 방바닥을 기어 다닌다고 했다. 그제야 김종욱은 눈을 뜨고 들숨을 쉬었다. 그 날 아침, 가난한 집 아낙이 약국을 찾아와 통곡했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여러 병원을 전전했으나 가는 곳마다 고개를 흔들었다고 말했다.

축 늘어진 아들을 방에 뉘어 두고 죽음을 기다리는 중이라 했다. 가만히 들으니 오령산증이었다. 약을 한 첩 지어 아낙에게 주었다. 조금씩 먹이고 저녁까지 기다려보라고 일렀다. 저녁에 다시 약국을 찾아 고개를 숙인 아낙이 울먹이며 말했다. 아이가 살아났어요.

육군 소위로 임관한 김종욱은 부산 오육구 병원 약제관으로 일했다. 원촌 산골에서 태어나 중앙대 약대를 다니는 동안 등록금을 제 때 납부하지 못했다. 강직하고 성실한 그를 눈여겨 본 학생처장 덕분에 무사히 학교를 마쳤다. 중위로 예편하자마자 서울 용산에 가희약국을 개업했다.

드물던 전화를 애써 개설했다. 경험이 적었다. 문을 닫았다. 마음을 추스르고 용산우체국 앞 큰 길에 있던 해성 약방을 인수해 약국을 다시 열었다. 찾는 사람이 넘쳐났다. 동부이촌동에서 온 아낙이 감기약을 사갔다.

그 날 밤, 약국 셔터를 내리고 잠에 들려 하는 데 아낙이 찾아와 쿵쾅쿵쾅 문을 두드렸다. 약화 사고였다. 규정대로 판피린을 조제해 주었으나 어리고 허약한 아이가 그 약 기운을 견뎌내지 못했다. 다행히 옆 건물 병원의 의사 이봉희가 필요한 처치를 해서 아이는 회복되었다. 약의 효능과 약사의 신념과 환자의 상태가 조화를 이뤄야 약이 사람의 생명수가 된다는 깨달음을 각인했다.

김종욱은 월남에 갔다. 1968년의 일이다.

민간인 신분으로 약품 보급관 일을 맡았다. 김종욱은 김정기와 최금순의 장남이었다. 부친으로부터 두 가지를 확실히 물려받았다. 하나는 정심(正心)과 화목 하라는 가르침. 다른 하나는 어쩌지 못하고 서 주는 남의 빚보증이었다.

부친 김정기가 하루는 도회에 나갔다가 밤이 늦어 귀가했더니, 기둥까지 송두리째 뽑혀 집이 사라지고 없었다. 빚쟁이들이 집을 뜯어 가재도구까지 가져갔다. 식솔을 처가에 맡기고 김정기는 일본에 갔다. 악착같이 일해 돈을 모았다.

고향에 돌아와 남의 빚을 갚아주고 약방과 정미소를 운영했다. 작고한 형님의 아들, 그러니까 김종욱의 사촌 형을 교육하는 데 김종욱과 차이를 두지 않았다. 김종욱도 용산에 약국을 개업한 뒤, 약국 전화를 빌려 쓰려 드나들던 사람의 빚보증을 섰다. 보증을 선 타인의 빚이 김종욱의 어깨를 눌렀다. 남의 돈을 벌어서 남의 빚을 갚는 데 자신의 인생이 쓰이고 있었다.

용산의 약국을 접고 월남으로 떠났다. 월남에서 귀국한 뒤 부친처럼 남의 빚을 갚아주었다. 서울 변두리에 영신약국을 열었다.

자기 시종에게 영웅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다. 사회적으로 주목 받는 큰일을 하여 명성을 얻은 자라 할지라도 여간해서 자기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의 마음까지 얻기 힘들다. 엄정함과 따뜻함, 강함과 유연함, 큰 것과 작은 것에 두루 미치는 정성을 고루 갖추어야 가능하다.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에 대해서 추상같이 엄격해야 한다는 경구다. 아버지는 그런 분이라고 김종욱의 아들이 말했다. 예순 여덟에 운전면허를 취득했던 강골의 손위 누이는 김종욱을 부모마냥 존중했다.

올해 여든 한 살의 백발이 성성한 손아래 누이는 손자가 살아 갈 나라를 위해 지난겨울 촛불 집회에 네 번 나갔다. 여든이 낼 모레인 사관학교 출신의 남동생은 시인같은 마음으로 살아간다. 칠십대의 셋째, 넷째 여동생 역시 마음과 몸의 눈 모두 형형하다.

그들에게 김종욱은 크고 따뜻한 산이다. 십여 년 전 약국 일을 접은 김종욱이 종교에 귀의했다. 일찍이 타개한 큰 누이를 빼고 네 동생이 드라마처럼 그와 같은 종교로 개종하거나 새로 같은 종교에 발을 들였다. 영락없이 독수리 오형제다. 아름다운 그림이다.

여든 다섯 살 김종욱은 올 봄, 어느 노인 병원의 약사로 취업했다. 일주일에 두 번 출근한다.

약은 천천히 조금씩 써야 한다는 믿음을 오래 지키고 있다. 마음을 바르게 다지고 영원히 시민들에게 믿음을 주는 약사로 살아가자며 반세기 전에 영신약국을 지었다. 그 약국을 떠났으나 김종욱은 스스로 영신약국이 되었다. 노년의 삶을 어찌해야 하는지,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그가 이정표를 조제해 주고 있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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