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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체 게바라

● 김희정 대전작가회의 회장

입력 2017-10-12 10:23   수정 2017-10-12 14:51
신문게재 2017-10-13 23면

김희정-사진
김희정 대전작가회의 회장

1967년 10월 9일, 3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체 게바라를 생각해 보았다. 그가 죽은 지 50년이 되었다. 체 게바라가 바라본 세상은 50년 전과 지금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더불어 그가 꿈꾸었던 혁명은 마무리되었는지 아니면 현재 진행형인지 미래 진행형으로 여전히 꿈으로만 살고 있는지는 그가 없어 물어볼 수가 없다. 39년의 삶을 살다간 그를 두고 세계 곳곳에서 그의 사상과 철학을 기리는 일들이 축제처럼 열리고 있다.

한 번쯤 혁명을 꿈꾸었든 아니면 소설책에서 읽었든 상관없이 그의 이름이 영원불멸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 보았다. 수많은 혁명가가 있었지만 그들의 이름은 희미한 옛 그림자의 추억으로 이야기되거나 그마저도 사라지고 없는데 체 게바라는 오히려 물질에 쫓겨 채울 수 없는 사람들의 한쪽 마음을 차지하고 있다. 그가 우리에게 39년의 삶을 통해 남긴 것이 있다면 혁명에 대한 양심良心(어진 마음, 좋은 마음, 편안한 마음, 순진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혁명에 양심을 담아 민중들을 바라보았기에 50년이 지난 지금 다시 그의 이름이 불리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그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민중들의 행복에 던졌고 죽는 그 순간까지 혁명이라는 뜻에서 양심을 버리지 않았다. 양심이라는 뜻이 단순히 옮고 그름, 선악의 기준이 아니라 다양한 마음을 품고 있다. 그 마음을 실천하면서 살다 떠났기에 사람들 마음에 오르내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체 게바라의 삶을 통해 민중이라는 단어나, 혁명이라는 단어나, 양심이라는 단어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었다. 어느 것 하나 떨어져 있거나 다른 뜻으로 해석해서 권력을 잡으면 독재자가 되고 더 나아가서 권력을 잡은 뒤 민중들의 돌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혁명이 어렵고 민중들의 마음을 얻는 일은 더욱더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체 게바라를 만날 수 없는 것처럼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잡는다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오로지 선거를 통해 혁명을 구현하고 선거를 통해 민중들(서민)의 삶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체 게바라가 남긴 것을 돌이켜 생각해 볼 때 혁명의 마음이고 양심에 대한 인식이 아니었을까. 이런 것들이 민주주의 방식에 뿌리가 내려 피를 흘리지 않아도 서민들의 삶을 바꿀 수 있고 한 발 더 나아가서 갑이니 을이나 하는 벽도 우리 사회에서 털어낼 수 있을 것이다.

서민들의 삶을 누가 어떻게 좀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 고민은 인류의 역사에서 이미 답을 내놓았다고 본다. 그들의 이름을 여기서 거론하지 않더라도 각자의 마음에 살고 있는 혁명의 마음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꿈꾸고 혁명가가 꿈꾸었던 세상이 일치했는지 체 게바라의 짧은 삶에서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체 게바라가 바랐던 것은 인간의 행복이었다. 인간이 행복해 지기 위해 가는 길을 막는 사람들에게는 눈엣가시처럼 보였겠지만 그는 그런 사람들을 목표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을 보고 더 나아가서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통해 양심이라는 마음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했다. 그렇다고 인류가 낳은 혁명가들이 양심을 빼놓고 혁명을 일으켰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혁명을 꿈꾸고 실천에 옮겨 권력을 잡았어도 시간이 흐를수록 민중들의 삶을 더 넓고 깊게 바라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점이다.

체 게바라의 혁명은 단순하게 정치적 혁명만을 꿈꾼 것이 아니다. 그 마음에 담긴 것은 민중들을 행복하게 해 줄 문화적 혁명도 담겨 있었다. 민중의 행복이 물질이나 자본의 바탕을 두었다면 그 많은 피를 주고 혁명을 사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혁명의 근간을 두어야 할 것이 있다면 여전히 민중들(서민)이고 그 민중들의 삶을 얼마나 양심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가 성공의 기준일 수밖에 없다. 체 게바라는 정글에서 책을 읽고 시를 쓰고 글을 썼다고 한다. 그런 성찰을 통해 고난의 길을 걸었다. 어찌 보면 체 게바라가 혁명가라는 이름보다는 양심을 알고 실천하려고 노력한 시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김희정 대전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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