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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 의사 최승도, 지리산 하루 종주기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입력 2017-11-07 11:21   수정 2017-11-07 15:56
신문게재 2017-11-08 22면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 교수
오후 4시, 지리산 천왕봉에 섰다.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었다. 잔비가 뿌리고 바람이 셌다. 한국인의 기상이 거기서 발원한다는 정상부 표석이 우뚝했다.

새벽부터 열 두 시간을 달려왔다. 성삼재에 내려 노고단 길을 잡았다. 지리산은 깊고 높고 아득히 넓었다. 쏟아질듯 별이 총총했다. 달빛이 교교히 쏟아져 내렸다. 잔바람이 부드러웠다.

"우리가 지리산을 전세 냈어요". 토끼봉을 오르며 아내가 말했다. 연하천 대피소에 이르러서야 밥 짓는 사람 소리가 들렸다. 형제봉에서 장엄한 일출을 접했다. 별과 달과 바람과 해가 거기 있었다. 천황봉을 향해 열두 시간짜리 걸음을 걸었다.

대학병원 산부인과 의사 최승도는 십년 전에 등산화를 신었다. 진료하고 수술하는 일상이 되풀이되고 술과 담배가 많았다. 모르는 사이, 심장에 작은 손님이 들었다.

즉시 담배와 술을 끊었다. 한식경 정도 운동할 양으로 집에서 가까운 청계산과 광교산을 올랐다. 오기로 버틴 오년이 지났다. 몸은 깨끗해졌다. 아침에 길을 나서 수도권 산을 다녀오기 시작했다. 다시 오년이 흘렀다.

지난 목요일 밤, 수원역에서 기차를 타고 구례구역에 내렸다. 십년을 걸어서 천왕봉에 올랐다. 쓰레기를 줍던 청년이 아니었더라면 종주가 무산될 뻔했다. 야간 기차로 이동한 데다 부족한 수면이 발목을 잡았다.

구름처럼 사람이 몰려오고 흩어져가는 사람들 마냥 구름도 일시 자취를 감추는 지리산이었다. 영신봉에 앉아 사위를 둘러봤다. 반야봉과 광양의 백운산, 아스라이 덕유산 자락이 눈에 들었다. 스무 살 남짓한 청년이 그 혼자 마시기에도 아까울 커피 한잔을 건넸다.

정신이 맑아졌다. 한 모금 커피에 눈마저 밝아져 청년이 배낭에 매단 비닐봉지가 보였다. 청년은 버려진 깡통 따위를 주워 담으며 종주를 하고 있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청년이 말했다. 착한 신선 같이 생긴 청년은 평화로웠다. 그와 아내는 다시 등산화 끈을 조였다. 그들도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세석 산장 어귀에서 그는 산 중의 의사가 되었다. 일행에서 떨어진 중년 여성이 저체온증에 허둥거렸다. 즉석에서 가능한 처방을 하고 여자의 남편과 안전 요원을 불러왔다. 여성은 안전해졌다.

장터목산장을 지날 때 비가 듣기 시작했다. 바람에도 힘이 실렸다. 돌길이 가파르게 이어졌다. 지리산은 길었다. 젖은 바위에 자주 미끄러졌다. 엉금엉금 걸음을 뗐다. 시야가 막혀 지나온 길들의 흔적이 사라지고 풍광이 없어졌다. 군데군데 이정표를 보고 걸을 뿐이었다.

얼결에 천왕봉 정상에 섰다. 열두 시간의 등정 끝자락이었다. 아내 박권정이 번쩍 두 손을 들었다. 아내는 의사 최승도의 길잡이였다. 십년을 걸어온 천왕봉 표석의 좌우에 서서 그들은 기념사진을 찍었다.

법계사 아래 로터리산장에서 하산하던 중년의 사내를 만났다. 일모도원의 뜻을 아는 사내였다. 아직 가야 할 산길은 멀었는데 날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들은 함께 걸었다. 최승도는 작은 이야기를 사려 깊게 듣고 응대하는 것이 지리산 계곡처럼 몸에 깊어진 사람이었다.

그는 술과 담배를 끊어 십년 간 근력을 쌓았다. 쉰일곱의 나이에 당일 지리산 종주를 당차게 마쳤다. 어디 근육뿐이랴. 공부가 간장처럼 익어서 쓸모가 있어지려면 십년을 소리 없이 숙성해야 한다. 인재를 키우거나 나라를 부국으로 만드는 데도 그만한 시간을 견디고 투자해야 한다.

십년을 꾸준히 걸으면 어느 큰 산인들 오르지 못하랴. 연습 없이 큰 산을 오를 수 없다. 작은 한 걸음이 없으면 산을 오를 수도, 산에서 내려 올 수도 없다. 의사 최승도는 사내에게 그런 가르침을 말없이 가르쳐 줬다. 중산리 계곡 동쪽 하늘에 구월 보름날 달이 휘영청 솟았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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