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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혹독하게 혹은 재미있게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학과 교수

입력 2017-11-07 16:36   수정 2017-11-09 14:21
신문게재 2017-11-10 23면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학과 교수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학과 교수
A교수는 수업을 재미있게 한다. 어려운 단어도 쉽게 풀어주고 수업 시간 내내 웃음이 떠나가지 않는다.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늘 연구실에 아이들이 와서 놀기도 하고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알아서 냉장고를 채워 놓기도 한다. A교수가 연구실에 없어도 아이들은 연구실을 차지하고 공부도 하고 잡담도 하며 학회실처럼 사용한다.

B교수는 엄청나게 엄하다. 아이들은 그 앞에서 숨쉬기도 힘들어 한다. 과제도 많고, 예의에 어긋나면 쉼표도 없이 호통을 친다. 종이컵에 커피를 타 와도 야단을 맞고, 과제를 늦게 내면 받아 주지도 않는다. 성적에 의문이 있다고 전화하면 오히려 한 단계 더 내려간다. 교수의 권위에 도전하면 바로 응징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A교수가 인간적이고 좋다고 할 것이다. 필자도 돌아보면 A교수 스타일로 평생을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2년부터 다문화가정의 결혼이주여성들을 가르칠 때는 아주 혹독하게 훈련을 시켰다. 훈련을 혹독하게 받으면 집에서 실수할 일이 적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글지도사 과정에서 53%밖에 합격하지 못했을 정도로 엄하게 처리하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고 나서 제자들은 이야기 한다. B교수가 엄하기는 했어도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가장 많다고 한다. 직접 과제를 작성해서 발표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란다. 어영부영 과제를 하면 불호령이 떨어지기 때문에 밤을 새서라도 그 분의 수업을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근 40년 가까이 교단에서 가르쳤지만 필자의 교수법에 관해 반기를 들었던 학생은 없다. 지금도 그냥 큰아버지 같아서 좋다고만 한다. 이제 제자들도 나이가 40 대 중반을 넘어서 같이 늙어가는 사이가 되고 보니 예전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한다. 필자의 강의는 재미있고 즐겁기는 했지만 솔직히 남아 있는 것은 별로 없단다.

이제 내리막길에 접어든 교직 생활에서 반성을 해 본다. 과연 아이들을 편하게만 해 주었던 것이 잘 한 것인가. 그 중에는 학문의 세계가 좋아서 대학 교수가 된 제자도 있고, 외국에서 교수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제자들도 있다. 돌이켜 보면 그들 스스로 학문이 좋아서 연구한 것이지 필자가 잘 가르쳐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돌아보면 "이 아이들을 좀 더 엄하게 교육시켰으면 더 훌륭한 학문적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박사가 되어서도 주변인을 남아 있는 제자가 있고, 석사학위만 받고도 외국에 나가서 교수요원으로 활동하는 제자도 있다. 물론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외국에 나가서 교수요원으로 활동할 것을 권하고 있다. 현재는 경제적으로 궁핍할 수 있지만 미래를 보면 그것이 훌륭한 투자가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가끔은 외국에 있는 제자로부터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러면 "학창시절에 좀 더 열심히 가르칠 것을 잘못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인터넷이 발달하여 바로 이메일로 답을 해 줄 수 있는 것도 행복하다.

지금에 와서 필자가 엄하게 가르친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두렵다. 친절한 큰아버지 같던 교수가 갑자기 엄한 시어머니로 바뀐다면 아이들이 적응할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대로 편하게 내버려 둘 것인가. 편하게는 해 주었지만 아이들이 예의에 어긋나게 행동하지는 않았다. 그냥 지식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예의범절을 잘 지키는 인성이 좋은 제자들로 키워야 하는가, 아니면 혹독하게 훈련을 시켜 인성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유능한 지식인으로 키워야 하는가 고민스럽다. 두 가지를 모두 겸비하게 할 수는 없는가. 아마 교직에 있는 분들은 모두 필자와 같은 고민에 젖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건강하고 착하고 유능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것은 꿈에 불과한 것일까.

술 권하는 사회에서 술을 마시지 않고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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