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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는 삶의 축] 299. 추억 속으로

우리 한옥이 아름답다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17-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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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래서 초가(草家)집에서 살았다. 추수가 끝난 만추(晩秋) 즈음엔 초가의 지붕을 갈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돈이 없는 경우엔 해를 미뤘다.

해가 바뀌어 장마철이 되면 지붕이 샜다. 안방까지 콸콸 쏟아지는 장맛비는 그예 이웃집으로의 '도망 잠'까지를 초래했음은 물론이다. 때문에 해마다 지붕을 고쳐야 하는 초가가 아닌 기와집, 즉 온전한 기와의 한옥(韓屋)에서 살았음 했던 건 어려서부터의 어떤 본능이었다.

나이가 더 들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그 즈음에 살았던 곳은 월세였는데 지붕이 슬레이트로 지어진 꽤 남루한 집이었다. 지붕을 덮는 데 쓰는 천연 점판암의 얇은 석판인 슬레이트는 시멘트와 석면을 물로 개어 센 압력으로 눌러서 만든 얇은 판이다.



한데 초가나 슬레이트나 도긴개긴인 건 기와처럼 튼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슬레이트 지붕 역시도 초가처럼 일정기간이 되면 교체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성립되었다. 지금도 그 시절이 잠시 전 귀싸대기를 맞은 양 기억에 생생한 건, 어떤 아픈 추억이 발동하는 때문이다.

당시 반에서 1~2등을 다퉜던 급우가 바로 앞집의 고래등 같은 기와 한옥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기와로 지어져서 한 눈에 보기에도 있어 보이는 한옥의 '끝판왕' 남간정사를 찾았다.

남간정사(南澗精舍)는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 65번지에 위치한 조선 중기의 별당건축이다. 조선 숙종 때의 거유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이 강학(講學)하던 유서 깊은 곳으로 낮은 야산 기슭의 계곡을 배경으로 남향하여 건립된 한옥이다.

경내의 입구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에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된 '기국정'이 있고 뒤편 높은 곳에는 정면 4칸, 측면 2칸에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된 '남간정사'가 우뚝하다. 남간정사는 정면 4칸 중 중앙 2칸 통칸에 우물마루의 넓은 대청을 들인 후 그 좌측 편에는 전후 통칸의 온돌방을 설치했다.

뒤편 기슭에서 흐르는 계곡의 물을 이 건물의 대청 밑을 통해 앞에 마련된 넓은 연당(蓮堂)에 모이도록 하여 경내의 운치를 한층 더하여 주고 있는 남간정사는 전국의 사진작가들 모임까지를 빈번하게 만드는 장소로도 소문이 짜한 곳이다.

다만 물이 원활한 소통(疏通)을 하지 못하고 한 군데서 둠벙(움푹 파여 물이 괴어 있는 곳)을 이루는 엉거주춤한 까닭에 마치 백년하청(百年河淸)인 양 탁하다는 건 오래 전부터 느껴온, 개선의 여지로 보는 시각이다.

어쨌거나 서울에 과거 세조의 실세였던 자준(子濬) 한명회(韓明澮)가 세운 정자 압구정(狎鷗亭)이 있다면 대전엔 단연 남간정사가 그에 필적(匹敵)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자그마치 3000번 이상이나 그 이름이 오를 정도로 자타공인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송시열 선생이 거주했던 남간정사는 조선시대 별당 건축의 양식적인 측면과 함께 우리나라 정원 조경사에 있어서도 독특한 경지를 이루게 한 측면으로도 그 의의가 적지 않다고 보는 터다.

이는 또한 획일화된, 아파트 문화권에서 사는 거개의 사람들에게 새삼 한옥의 우수함까지를 고찰하게 만드는 계기로도 발동함을 제어하기 어렵다. 그럼 여기서 한옥의 위대성을 잠시 살펴볼까 한다.

한옥은 먼저, 자연을 관조하며 거기에서 생의 유연함을 배우고 주변의 환경과 어울리도록 집의 방향을 잡았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아울러 풍수(風水)에 맞게 설계된 살림집의 이상형 한옥은 통상 남향으로 지었다.

이는 집을 짓는데 있어 골짜기가 남향으로 열려야만 볕이 잘 들며 이런 터전이야말로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엔 바람기까지 동반하여 더 시원하다는 과학적 발견까지를 도출해 냈다 할 수 있겠다.

한옥은 또한 안방과 사랑방 외에도 너른 마루가 있어서 설날이나 추석에 온가족이 모이는 날엔 더욱 효과적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으로도 그 활용이 요긴했다. 예부터 어르신들께선 "사람은 자고로 땅을 딛고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개인적 바람이지만 건강에도 그만이라는, 황토로 지은 한옥을 손수 지어 거기로 이사를 하는 게 소망이다. 남간정사처럼 고즈넉하고 운치까지 있는 한옥에 더하여 그 별당(別堂)을 기국정(杞菊亭)처럼 멋들어지게 만든다면 거기서 맞는 길손과의 주담(酒談)은 더욱 흥미진진하겠지?

우리의 전통 한옥은 조상의 지혜와 슬기의 문(門)까지를 동시에 열게 하는 단초다. 여기는 아울러 넉넉함과 여유, 그리고 내외와 가족 간의 정겨운 한 폭의 풍경화 같은 그림이 동시에 펼쳐지는 화목의 장(場)이기도 하다.

'야외전축 틀어놓고 너와 내가 밤새도록 춤을 추던 그 시절 ~ 갈래머리 단발머리 몽당치마 ~ 휘날리며 주름잡던 그 시절 ~ 그 모든 남자 친구들 그 모든 여자 친구들 오늘따라 너무나 보고싶네 ~" 설운도의 <추억 속으로> 가요다.

우리네 전통의 한옥은 그 추억 속으로 들어가는 초입(初入)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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