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밴드
  • 트위터
  • 페이스북
  • 검색
  • 전체메뉴

실시간뉴스

닫기

[중도시평] 거짓말하는 의사

조강희
대한재활의학회 이사장
충남의대 재활의학과 교수

입력 2017-11-21 09:59   수정 2017-11-21 17:37
신문게재 2017-11-22 22면

조강희 대한재활의학회 이사장

재활의학과 전공의를 시작하고 9개월 정도 지난 겨울, 나름 열심히 환자 보면서 공부해서 이제 슬슬 비록 전공의지만 재활의학과 의사로서 이제 한 몫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검사. 재활치료, 약물치료는 어느 정도 익숙해 질 무렵, 뇌졸중이 심하게 발생해 중환자실에서 장기간 치료 후에 재활의학과로 전문재활치료를 위해 입원한 환자의 담당을 맡았다.

환자의 간병과 보호자는 딸들이 돌아가면서 정말 열심히 했다. 하지만 환자는 협조를 하지 않았다. 입원 2-3일 동안 무척 가족과 나를 고생시켰다.

환자는 뇌졸중이지만 난 바로 회복될 거니까 운동치료, 약물, 보조기, 스스로 생활하기 위한 훈련 등 재활치료를 할 필요도, 이에 대한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설득하는 의료진에게 욕까지 했다. 환자를 이해시키고 설득해서 치료를 진행해야할 의무와 책임감이 있는 혈기 왕성한 전공의 1년차 담당의사로서 이런 무례하고, 비협조적인 환자도 반드시 치료에 순응하는 "순한 양"으로 만들어야한다는 일념하에 고민하다, 사실대로, 있는 그대로 정확한 현재 뇌졸중의 정도, 부위, 예상되는 장해, 앞으로의 재활치료 내용을 설명했다.

고생하는 딸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치료하자고 설득했다. 마치 중증 암 판정을 받은 환자가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등의 단계를 거치면서 암에 걸린 것을 받아 들이고, 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 과정에서 의사의 충분한 설명 및 환자에 대한 이해가 치료 순응도를 좋게하여 결국 치료 효과가 좋아 진다는 보고를 참고했다.

나의 이런 순진한 꿈은 바로 무참하게 깨어졌다.

뇌경색이 심해서 앞으로 혼자 걷기가 매우 어렵고, 지팡이나 휠체어, 간병인이 필요할 것이라는 설명을 듣자 마자, 환자는 바로 입원 조차 거부하고, 퇴원했다. 간병하는 딸은 경험도 없는 전공의가 쓸데 없는 말을 환자에게 했다는 눈치를 엄청나게 주면서 환자를 모시고 병원 밖으로 나갔다.

나의 경솔함이 환자에게서 치료를 받을 기회 조차 박탈했다는 자책감이 쓰나미처럼 쳐들어 왔다. 그 이후에는 어정쩡하게 일단 치료해보면서 경과를 보자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환자에게 설명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의사가 절대하지 말아야 하는 일은 요새는 스스럼 없이 하고 있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

대부분 환자에게 당신은 반드시 좋아진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걸어서 집에 갈수 있고, 심지어 스스로 운전도 하고, 다치기 전에 일하던 직장도 다닐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짓을 의사인 내가 하게 된 이유는 환자의 재활치료 순응이 매우 좋기 때문이다.

가족 역시 마찬가지다. 재활치료의 특성상 환자의 협조가 없으면 치료 진행 자체가 불가능하고, 재활치료를 전혀 하지 않으면 신경손상 후 회복 가능성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단점도 있다. 힘든 재활운동, 보조기, 휠체어 사용을 안 하려고 한다. 의사인 나는 또 거짓말을 한다. 재활치료 시작한지 1-2개월 경과된 지금, 앞으로 회복되어 걸을 수 있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리므로 그동안 열심히 치료해 보자고 설득한다.

이런 의사의 거짓말에 속아서 하루 6-7시간 이상을 땀흘리며 열심히 재활운동을 한 환자는 거짓말하는 의사도 놀랄 정도로 회복되어 걸어서 집으로 퇴원하기도 한다.

충분한 기간 동안 충분한 양의 재활치료를 했다고 판단되면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때부터는 의사의 경험, 지식을 총 동원하여 근거있게 가능한 정확한 미래의 장해 상태, 회복가능성, 장애를 가지고 사회에서, 가정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설명한다.

환자와 가족의 감정상태도 고려하지만 더 중요한 것으로 환자가 효과가 없는 치료를 더 이상 받지 않고, 가능한 빨리 가정, 사회로 복귀하고, 가족 역시 불필요한 치료를 위해 환자의 간호와 간병을 위해 같이 병원에서 살거나 통원하는 것으로 중지하고, 환자의 가족도 본인의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은 근거 중심의 치료를 한다. 재활의학 역시 마찬가지다. 더 이상 치료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경우에는 더 이상 의사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고, 사회도 의사에게 거짓말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재활치료 초기의 불가피한 거짓말은 의사만이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의사 외는 그 누구고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며, 근거가 없거나 희박한 사실 주장은 참아주길 바란다.

 

조강희 대한재활의학회 이사장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인기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