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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크리스마스 마켓의 현대적 의미

이성만 배재대 교수

이성만 배재대 교수

이성만 배재대 교수

  • 승인 2017-12-18 08:52
  • 수정 2017-12-19 18:32
이성만 배재대 항공운항과 교수
이성만 배재대 교수
독일의 겨울은 춥다. 겨울이 몰려올 즈음 도시의 중앙광장에는 어김없이 시장이 열린다. 보통은 11월 말부터 12월 24일 오후 2시까지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그것이다. 근래에는 우리네 코엑스도 독일식 크리스마스 마켓을 선보이고 있다. 특정 종교를 넘어 범세계적인 브랜드가 된 지도 오래다. 크리스마스 마켓의 뿌리는 로마인의 제국인 로마제국의 법통을 이어받겠다고 건국한 '독일인의 신성로마제국'에 있다. 어떻게 이 마켓이 생겨나서 오늘날처럼 글로벌 브랜드로 재탄생한 것일까?

크리스마스 마켓의 원조는 성 니콜라스 축일에 하는 선물용 시장이었다. 이후 크리스마스이브에 선물을 주고받으며 11월 말부터 이를 위해 생겨난 시장이 '크리스트킨들 마켓'이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에 속했던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마켓이 원조였다고 하고, 비슷한 시기에 뉘른베르크에도 생겨났다고 한다. 이후 신성로마제국 전체로, 1980년대 중반부터는 전 세계로 확산됐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경제적 효과뿐 아니라 지역 전통문화의 보존과 발굴 그리고 지역 정체성 형성에 남다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문헌에 의하면 크리스마스 마켓이 가장 먼저 열린 곳은 1384년 드레스덴 근처의 바우첸 시이다. 당시는 제후의 허가를 받아야만 개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주민들은 대림절 단식이 끝난 후 먹을 고기나 겨울나기에 필요한 물건을 하루 동안만 구매할 수 있었다.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대림절은 속죄와 회개를 하면서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고통과 기쁨을 간직한 기간이었다. 주민들은 이 기간에 용서와 화해 그리고 나눔을 실천해야 했다. 이런 종교적 의미는 현대 크리스마스 마켓에도 남아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린아이에게 선물할 장난감, 과자, 군밤, 아몬드 등의 물품이 추가됐지만, 기독교의 종교적 경건함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활성화될 수 없었다. 양차 대전을 주도한 독일인들은 기독교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되면서 교인 숫자도 폭락했다.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도 변신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 맥주처럼 크리스마스 마켓도 도시와 지역마다 다르고 한 도시 안에서 열리는 마켓들도 소소한 차이가 있다.

크리스마스 선물 교환은 독일 사회에서는 중요한 사회적 행위이다. 비싸지 않으면서 독특하고 정성스런 조그만 수제품을 선호한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이런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상품을 파는 곳이다. 비싸지 않으면서도 장인과 지역 전통의 숨결을 담은 지역 수공예품과 지역 친화적인 먹거리가 주류이다. 독일의 먹거리를 세상에 알린 독일 최초의 크리스마스 비스킷 렙쿠헨, 하얀 슈거 파우더를 뒤집어 쓴 발효 빵 슈톨렌, 우리네 정종처럼 계피와 레몬을 넣어 데워 마시는 레드와인 글뤼바인, 알코올 도수가 높아서 환절기에 많이 마시는 맥주 복비어가 대표적이다. 당연히 구유, 호두까기 인형, 산타클로스, 천사, 악마, 피라미드 같은 수제 목각 인형도 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는 용서와 화해 그리고 나눔의 시간이 아니던가. 그러니 가족 단위나 동료들이 함께 이 마켓을 즐기는 건 당연하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이처럼 지역 상품 소비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의 발굴과 보존 그리고 재생산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4차 산업혁명의 플랫폼과 꼭 닮았다. 지역의 산업과 문화가 한곳에 모여 또 다른 무형·유형의 상품으로 재생산돼 마케팅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역 전통을 살린 문화와 예술 프로그램들이 동시에 개최된다. 나눔과 섬김의 기독교 정신을 존중해 기업은 시장 개설에 협찬하고, 상점들은 수익의 일부를 소외계층에 기부한다. 이처럼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은 지역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 선물교환은 가족과 지역 주민들 간의 연대와 교류를 강화한다. 문화적으로는 자극을 받은 주민들이 지역 전통문화를 계승할 목적과 이유를 재확인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 경제적으로는 로컬 푸드 운동을 넘어 다양한 지역 상품의 제작과 소비를 활성화하고, 지역 순환경제를 역동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든다. 상품의 상호 판매와 교류는 지역들 간의 공존과 화합을 가능케 한다. 따라서 각박한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보면 크리스마스 마켓 정신은 우리에게도 분명 매력적이다.

이성만 배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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