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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59. 식물괴담

입력 2017-12-26 00:00   수정 2017-12-26 00:00

딸 수경이도 없는 토요일 저녁 마탁소는 실로 오래간만에 아내 송원희와 단 둘이 저녁식탁에 앉았다. 송원희는 소주를 와인 잔에 따라주었다.

그리고 자기 잔에는 백포도주를 부었다.

분위기를 살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마탁소는 알아차렸다.

"오늘 아침에도 내가 숙소를 나오면서 화분에 물을 주는데, 페추니아하고 동양란 몇 분 있는 거 말이야. 매일 아침 물을 주면 꽃이나 잎들이 그렇게 반색을 하며 좋아할 수가 없거든, 활짝 웃고 있단 말이야.

근데 토요일 아침에는 그렇지를 않아요. 내가 집에 가서 당신 만난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같아요.

녀석들이 질투를 해요. 물을 주고 말을 걸어도 별로 반가워하지를 않는 것 같단 말이야."

"당신 머리가 약간 이상해진 것 아녜요, 무슨 꽃들이 질투를 해요?"

"아냐, 요즘 나무들하고 대화를 했다는 사람이 생각났어.

벡스터라고 하는 미국사람이었어. 그 사람 주장은, 꽃들이 질투도 하고 무서워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복수를 하기도 한다는 것이야. 최근 내가 몇 번 이상한 경험을 하고 나서는 그게 예사롭게 보이지를 않아. 꽃이, 분명 질투를 해."

"복수를 한다고, 어떻게요?"

"가장 쉬운 것은 우선 나무가 독을 뿜는 거지. 나무들 간에도 생존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전쟁을 한다고. 안면도에도 지금 숲속에서 떡갈나무와 소나무가 전쟁을 하고 있어요.

나무 집단끼리 독을 뿜거나 햇빛을 가리거나 해서 적을 죽어버리게 하는 거지. 지금 떡갈나무가 이겨가고 있어서 안면송을 보호하기 위해 떡갈나무를 솎아내고 있다니까."

마탁소는 아내가 만든 고추장 돼지불고기 한 점을 입에 넣느라 잠시 말을 중단했다. 그 오묘한 맛을 음미하던 그는 다시 말을 시작했다.

"두 번째로는 자살이야. 나무가 스스로 죽어버리는 거야. 못살아서 죽는 게 아니고, 죽어서 무언가를 못살 게 하는 거지.

예를 들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귀한 약초 같은 것이 스스로 죽어서 자기 존재를 없애는 거야.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 자기 종을 희귀하게 만드는 방식인데 사람들로 하여금 귀하게 여기게 만드는 것이지. 그냥 자살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피해자를 동반하지.

왜 사향노루가 죽을 때 사향주머니를 터뜨리고 죽잖아.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는 거야. 그와 비슷한 거지."

송원희는 여전히 남편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그녀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탁소는 이번에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세 번째 복수가 아마도 가장 큰 영향을 인간들에게 줄 거야.

식물들이 자연의 재앙을 불러 오는 것 같아. 왠지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마존 열대우림이 없어지면서 가뭄이 계속된다든가, 알 수 없는 질병이 갑자기 생긴다던가 하면서 말이야. 기상이변도 그런 거 아닐까?

식물들의 부조화로 생기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재앙 같은…."

"웃기는 소리 말아요."

송원희는 여전히 코웃음 쳤다.

"그래, 웃기는 이야기로 넘어갔으면 좋겠소.

인도 서해안에는 아주 무성한 숲이 있는데,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된다는 전설 때문에 그렇게 숲이 무성하다는 거지.

'마하데오 코리'라고 한다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 숲에 들어가면 절대 안 된다는 걸 어렸을 때부터 배운데. 그 숲을 건드리면 반드시 재앙이 마을을 덮치는데, 마을에 흉년이 들고, 사람들이 미쳐 버리거나 하는 것은 보통이고, 갓난아기들이 갑자기 병들어 죽거나 귀신들이 마을에 나타나기도 한다는 거지.

우리 어렸을 때 산에 산신령이 있다고 믿었던 것과 비슷한 거 같아."

소주 한 모금을 입에 털어 넣은 마탁소는 다른 나라의 예를 들려주었다.

"티베트에서는 나무를 신과 유령이 사는 집이라고 믿어. 에티오피아도 마찬가지고.

선진국이라는 일본인들도 수도원과 절의 숲에는 영적인 존재가 산다고 믿고 조심스럽게 제사를 모시고 참례한다는 곳이 있어요.

태국도 마찬가지이고. 하기는 우리도 옛날에는 그랬지. 내가 어렸을 때 산에 가서 아이들은 함부로 오줌을 누지 말라고 했어요. 벌 받는다고. 무슨 벌인지는 몰라도.

그 뿐인가 마을 성황당에 있는 당목을 건드리면 마을에 재앙이 온다는 것은 지금도 믿는 사람이 많지. 산이나 나무에 신령이 살고 있다는 생각은 어느 나라에든 다 있었던 것 같아.

서양도 마찬가지야. 웃기는 일이 아니라 무서운 일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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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소름끼쳐요."

송원희도 비로소 남편의 이야기를 믿는 눈치였다.

"로마에서 떡갈나무는 전지전능한 천둥 신에게 바쳐진 나무라서 제사를 지냈고, 보리수는 평화의 보호 신에게 소속되어 있어 진리를 나타내 준다고 믿었거든. 그래서 재판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열리곤 했지. 신기하지 않아?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득도했다는 것과 말이야. 무언가 일치하지 않아?

영국에서는 옛날 켈트족의 방식에 따라 식물에 치료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각종 질병의 치료법을 현대적으로 찾은 의사가 있어요.

에드워드 벡이라는 의사인데 그는 꽃에서 무엇인가 성스러운 것, 일종의 영혼을 느낀다고 믿는데요. 그는 영혼이 치료를 돕는 감흥을 불러일으킨다고 믿는데, 이 치료법을 닥터 벡 치료법이라고 하지.

38가지 치료법이 있다고 거야. 단순히 플라시보 효과가 아니라 실제로 치료효과가 있다는 거예요."

그날 저녁 송원희는 잠자리가 뒤숭숭했다.

꿈에 아들 순원이 보였다.

아들은 낙원 같은 곳에 있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형형색색의 수많은 꽃들이 함박웃음을 짓듯 활짝 피어 있었다. 꽃향기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여기저기서 벌과 나비들이 날아들었다. 아들의 옆에는 젊고 예쁜 아가씨가 있었다. 가냘프고 아리따운 아가씨였다. 아들과 잘 어울린다 싶었다.

그들을 보는 송원희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아들이 어떤 꽃으로 다가갔다.

튤립같이 생겼지만 튤립도 아니었다. 탐스럽게 크고, 색깔이 곱고 선명한 처음 보는 꽃이었다. 아들이 꽃을 따서 아가씨에게 선사하려고 하는지 꽃에 손을 내밀었다.

그 때였다. 꽃잎이 갑자기 아들의 손을 덥석 무는 것이 아닌가. 탐스런 꽃잎들을 있는 대로 펼쳐 마치 문어가 여덟 가닥의 다리를 휘둘러 먹이를 휘감듯 아들의 손을 물고는 마구 빨아대는 것이었다. 아들의 손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아들이 놀라 손을 빼내고자 했지만 빠지기는커녕 늪 속에 빨려 들어가 듯 점점 더 깊이 끌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옆에 있는 아가씨도 놀라 아들에게 달려와 같이 손을 빼내고자 안간힘을 다했다.

이때였다.

그토록 아름답던 주위의 꽃들이 일제히 일어나 두 젊은이에게 달려드는 것 아닌가. 그 아름다운 꽃들이 갑자기 악마의 얼굴이 되어 한꺼번에 두 사람의 피라도 빨아 먹겠다는 듯이 달려들고 있었다.

송원희는 너무도 무섭고 놀라 "으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아들과 아가씨를 빼내려고 마구 손을 저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두 손과 두 발을 버둥거리던 송원희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잠을 깨었다.

옆에서 자고 있던 마탁소도 덩달아 놀라 일어났다. 송원희는 얼굴에 식은땀이 흐르고, 아직도 온몸을 떨고 있었다.

"여보, 나쁜 꿈을 꾸었어?"

송원희는 말도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그녀는 단지 "순원이가, 순원이가…" 하면서 가쁜 숨을 몰아 쉴 뿐이었다.

송원희는 네덜란드에 있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무섭고 두려웠다. 몇 시인지 시계를 보았다. 네덜란드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라도 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아들은 아직 전화번호를 알려오지 않았다.

순원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그로부터 1주일 정도가 지난 후였다.

순원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 성공했어요. 튜라플리네스 합성에 성공했습니다. 우리 연구원과 쉬뢰더씨가 드디어 해냈습니다. 씨앗 배양에 성공해서 지금 시험관에서 자라고 있는데, 잘 크고 있습니다. 성공률이 95%라고 합니다. 정말 너무 기쁩니다."

순원의 목소리는 흥분과 기쁨과 놀라움에 주체를 못하는 듯 했다.

마탁소가 물었다.

"너 괜찮냐? 아무 일 없는 거지?"

"예, 잘 있습니다. 건강합니다."

순원의 엄마가 이어 전화에 나왔다. 엄마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너 괜찮은 거지? 아프지 않고?"

"예."

"너 손은 괜찮니? 다치지 않았어?"

"예, 괜찮아요. 여기 사람들도 너무 좋고요. 경치도 너무 좋아요. 아무 걱정 마세요."

송원희는 공연히 애태웠던 1주일이 한 달이나 지난 듯 했다. 무엇보다도 순원이 건강하다니 우선 안심하였다.

역시 개꿈이었나 보다.

그렇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불안한 것은 무슨 연유일까?

(계속)

우보 최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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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호 전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전)국무총리 비서실장, 행정중심도시 복합도시 건설청장, 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 행자부 인사실장,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2002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사무차장(운영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전)배재대학교 석좌교수, 공주대 객원교수, 고려대 객원교수,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회 위원(2016)으로 활동했으며 현)홍익대 초빙교수이다.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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