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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9. 정약용이 귀양을 가지 않았더라면

'노오력'의 배신 사회를 責한다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18-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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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초상/출처=다산학술문화재단
목민심서(牧民心書)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저서이다. 관의 입장이 아닌 민의 입장에서 저술한 이 책은 그의 강진 유배 생활 19년간의 거의 전부를 바친 역작이다.

정조의 특별한 총애까지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그가 나락으로 떨어진 건 이벽. 이승훈 등과의 접촉을 통해 천주교에 입교하게 되면서부터다. 당시 천주교 신앙은 성리학적 가치체계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어 집권층으로부터 격렬한 비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민심서는 관리로서 수령이 부임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곤 청렴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는 법,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하는 법 등이 두루 기술돼 있다. 이어 공적인 일을 수행하는 법과 백성을 사랑하는 방법, 아전들을 단속하는 법도 등장한다.



세금, 예절, 군사, 재판, 그리고 흉년에 백성을 구제하는 법도 실려 있어 백미다. 조선시대에는 중앙정부의 행정력이 지방에까지 고루 미치기 어려웠기 때문에 수령들이 행정뿐만 아니라 사법권도 가지고 있었기에 그 권한이 막강하였다.

하지만 가렴주구가 시작되면 민초들은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동학혁명의 단초가 된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이 바로 그런 케이스라 하겠다. '사기'를 쓴 사마천에 필적하는 위업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는 목민심서는 한 마디로 수령이 백성을 잘 다스리는 법을 담은 관료의 지침서인 셈이다.

목민심서가 오늘날까지도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것은 부패한 관료가 비단 조선시대만의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산의 예리한 시선과 천착, 그리고 방대한 저술의 천재성에서 새삼 그가 현존하는 인물이었더라면 오늘날 촌철살인까지를 자랑하는 으뜸의 기자(記者)가 아니었을까도 싶다.

작년 늦가을에 모 언론인 선배님(기자)과 술잔을 나눴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고 하시기에 술을 사드리려 문자를 보냈던 것이다. "홍 기자는 정년이 언젭니까?" "2년 남았습니다." 2차까지 가는 바람에 술독에 빠져 어찌 집까지 돌아왔는지 중간에 필름이 또 끊어졌다.

선배님께서 질문하신 나의 정년퇴직 건(件)은 본업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현재의 직장에 대한 것이었다. 따라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여러 매체로의 기.송고 기자 노릇은 정년 이후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못해먹을 기자 노릇'인 건, 현재 아홉 군데나 되는 곳에 글을 보내건만 정작 원고료와 취재비를 주는 곳은 겨우 반(半)밖에 안 되는 때문이다. 그 반도 정해진 나름의 가이드라인이 있어서 월 1건에 한하여서만 기사로의 채택 내지, 해당 편집팀 담당기자에게 낙점이 되지 않으면 아예 사문화된다는 치명적 약점까지를 내재하고 있다.

나머지 반은 재능기부 성격인 곳도 있고, 향후 출간을 목표로 한 집필도 있는 등 그야말로 좌충우돌의 형국이다. 여하간 기자 얘기를 꺼낸 김에 더 깊숙이 들어가 본다. <노오력의 배신 - 청년을 거부하는 국가 사회를 거부하는 청년> (조한혜정 외 공저 / 창비 발간)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 "기자가 60(정년)까지 언론사 안에 남아있으면 천수를 누린다고 한다.(P.41)" - 그야말로 '웃픈'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다. 경험 상 기자라는 직업은 그야말로 '노가다'인 까닭이다.

<노오력의 배신>은 이른바 '금수저' 와 '흙수저'에 이어 '헬조선' 등의 계급론이란 담론이 성행하기 전부터 이러한 조짐을 읽어온 여럿의 기자들(공저자)이 집중토론과 함께 20~30대 청년 심층 인터뷰 등을 통해 드러난 현상을 가감 없이 엮은 책이다.

지금 한국의 대다수 청년들은 '노오력의 배신'을 경험하고 패닉에 빠져 있다. 그들은 부자 부모에서 태어난 금수저 출신이 아닌 바엔 제아무리 노력을 해봤자 '레드퀸 효과'로 말미암아 집요하게 빚이 쫓아오는 현실에 절망한다.

이는 '붉은 여왕 효과(The Red Queen hypothesis)'로도 불리는데 계속해서 발전하는 경쟁 상대에 맞서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진화하지 못하는 주체는 결국 도태된다는 가설이다. 이는 영국의 대표적인 아동 문학 작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으로 간행된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유래했다.

앨리스가 붉은 여왕과 함께 나무 아래에서 계속 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앨리스가 숨을 헐떡이며 붉은 여왕에게 물었다. "계속 뛰는데 왜 나무를 벗어나지 못하나요? 내가 살던 나라에서는 이렇게 달리면 벌써 멀리 갔을 텐데." 붉은 여왕이 답한다.

"여기서는 힘껏 달려야 제 자리야. 나무를 벗어나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해." 그러니까 어떤 대상이 변하더라도 주변 환경도 같이 변하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을 해봤자 뒤처지거나 제자리에 머물고 마는 현상을 꼬집는 것이다.

작금의 청년들은 또한 지난 세월호 사건에서 국가와 정부가 유족과 국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민중을 아예 벌레 취급(이는 최근의 제천 화재에서도 도돌이표로 드러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을 한다고까지 느끼게 되었다.

베이비부머인 나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부모님 세대 역시 가난한 삶은 모욕적인 삶이었고 '노력'이란 가난이라는 '모욕적 상황'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때문에 기를 쓰고 자녀를 대학(그것도 기왕이면 소위 SKY대 등의 명문대)까지 보내고자 고군분투했던 것이다.

그러나 더욱 불거지는 빈부격차의 간극과 초경쟁 입시교육의 심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갑과 을의 차이에 있어서의 호혜(互惠)적 중재자의 인터레그넘(interregnum) 장기화 현상은 급기야 '탈(脫)조선' 신드롬까지를 불러왔다.

예컨대 "더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서 한국을 떠난다"는 것이다. 2015년 한국의 무기수입은 9조 원으로 세계 1위였다.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은 이처럼 막대한 국방비가 들어가고 있음에도 북한의 위협에 딱히 대응을 못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군사체제가 존속하는 한 국민의 성장(출산과 보.교육에 대한 투자)과 사회의 성숙(발전)을 위해 쓰일 재정은 부족할 것이고 산업에 투자할 재원 역시도 늘 부족할 것이다. 주지하듯 '노오력'는 노력보다 더 큰 노력을 하라는 말로써, 그러나 사회가 혼란하니 노력 가지고는 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풍자한 말이다.

이 땅의 청년들은 '노오력'마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극도의 배신감에 치를 떨기 시작했다. 아울러 우리사회가 금.은.흙수저로 계층화되어 있음을 아울러 간파했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국민은 돌보지 않는 국가에 살면서 시민들의 존엄은 낮아지고 반대로 혐오감은 파도처럼 더욱 높아지게 하는 계기로 발전했다.

OECD 가입국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길고 수면시간은 가장 짧은 나라, 그래서 '저녁이 없는 삶'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자살률이 가장 높은 반면 출산율은 가장 낮은 나라 역시 코리아다. 여기에 더하여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답이 없는 나라라고 한다면야 뉘라서 "00충"이라는 따위로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벌레까지를 동원한 자조적 막말까지를 남발하지 않겠는가.

청년이 절망하는 사회는 희망도 없다. 목민심서의 핵심은 애민(愛民)이다. 목민심서와는 별도로 다산의 형님인 정약전(丁若銓)이 남긴 자산어보(玆山魚譜) 역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어류학서(魚類學書)다.

흑산도 근해의 수산동식물 155종에 대한 명칭·분포·형태·습성 및 이용 등에 관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1801년(순조 1) 신유사옥(辛酉邪獄)으로 전라도 흑산도(黑山島)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흑산도 근해의 수산생물을 실지로 조사하고 채집한 기록이다.

책명에서의 자산(玆山)은 흑산(黑山)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수산동식물 155종에 대한 각 종류의 명칭·분포·형태·습성 및 이용 등에 관한 사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런 걸 보면 정약용.약전 형제는 아마도 타고난 천재였지 싶다.

어쨌든 만약에 정약용이 귀양을 가지 않았더라면 목민심서 역시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 감히 예단해 본다. 왜냐면 그처럼 똑똑한 인재는 당연히 군주의 총애를 받기 마련이기에 관직에서의 잇따른 승차(陞差)는 불을 보듯 뻔한 때문이다.

그랬더라면 어찌 짬을 내서 그토록 방대한 업적을 저술할 수 있었으랴. 관직 역시 기업과 마찬가지로 고위직일수록 시간을 내기 어려움은 상식이다. 다산은 유배생활에서 벗어난 뒤 '사암(俟菴)'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이는 경전에서 따온 말로, 먼 훗날 성인들이 자신의 학문을 보더라도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당찬 확신에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제라도 청년이 희망하는 대한민국을 건설해야 옳다. 관료(官僚)들의 탁상행정은 국민을 피곤하게 만드는 단초다.

다산은 그의 힘든 귀양살이를 반면교사의 전기로 활용했으며 관리들의 올바른 저울이 백성을 편히 살게 만든다는 것까지를 천착했다. 자녀의 웃음소리는 화목한 가정의 압권이다. 정약용이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건 바로 백성(국민)들의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저녁이 없으면 자녀도, 행복도 없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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