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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걸림돌과 디딤돌

김호택(연세소아과 원장)

김호택 연세소아과 원장

김호택 연세소아과 원장

  • 승인 2018-01-09 14:05
  • 수정 2018-01-10 09:09

신문게재 2018-01-1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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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택(연세소아과 원장)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해군이 자랑하던 세계 최강의 전함 비스마르크호는 대서양의 제왕이었다. 비스마르크호를 제압하기 위해 영국 해군은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지만 결국 갓 건조된 신예전함 프린스 오브 웰즈 호가 그 행운의 주인공이 된다. 전투력으로는 부족했지만 선배 전함의 희생을 동반한 협공 덕분이었다고 한다.

20여년 뒤, 최강 전함의 지위를 물려받은 프린스 오브 웰즈호는 일본군의 침공을 견제하기 위해 출격했다가 말레이시아 앞바다에서 일본 전투기와 폭격기의 공격으로 격침된다. 전함의 시대가 비행기의 시대로 바뀌는 현실을 몰랐던 것이다.

일본 해군도 똑같은 실수를 범한다. 가장 강력한 철로 제조되고 가장 긴 사거리의 주포로 무장한 당시 세계 최강 전함 야마토와 무사시는 전함끼리의 전투에서는 천하무적을 자랑했지만 항공모함 시대가 열리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침몰하고 만다. 당시 야마토를 격침시키기 위해 미군 전투기와 폭격기 1,000대가 동원되었다는 기록을 보아 정말 엄청난 전함이었다는 짐작이 가능하기는 하다.



전함들의 흥망사에서 우리는 전쟁의 룰이 바뀐 것을 모르고 전투에 임하면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얻는다. 그렇지만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면서 경쟁과 성장의 룰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IT(Information Technology) 시대가 열리면서 미국의 시어스 백화점과 일본의 미스코시 백화점을 비롯한 역대급 오프라인 매장들이 속속 규모를 줄이거나 심지어 문을 닫고 있다. IT 시대 초기에 여러 전문가들이 예상했지만 당시에 이 경고를 귀담아 들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제 DT(Data Technology) 시대가 열리고 있다. IT 시대에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기만 했지만 DT 시대에는 데이터를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 IT 시대에는 나만 알고 있는 정보가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DT 시대에는 공유되는 데이터에서 어떤 것이 활용 가능하고 가치가 있는지를 파악하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상생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든 세상이 열린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뒤집어 얘기한다면 상생이 서로를 발전시켜주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지만 우리는 눈앞의 나무만 보면서 살아간다. 멀리 있는 숲을 상상할 능력마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비트코인이라는 실체도 모호한 화폐에 열광할 것이라는 것을 불과 1년 전만 해도 인식하기 어려웠지만 지금 세계는 가상화폐 열풍에 갇혀 있다.

어떤 정보와 데이터가 옥(玉)이고 석(石)인지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우리에게는 없다. 그러니 수없는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고 수많은 길이 아닌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엄청난 기회와 지뢰밭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 사는 우리는 발 한 번 잘 못 디디면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인터넷에서 '길을 걷다 걸려서 넘어지면 걸림돌이지만 그 돌에 의지해서 딛고 일어서면 디딤돌'이라는 글을 보았다. 월호 스님 말씀이라고 한다.

스님은 '스트레스가 많이 생기면 스트레스를 잘 관찰해서 내 수행의 계기로 삼고, 오히려 스트레스가 없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셨다고 한다.

비단 수행과 연관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 자체가 모두 걸림돌 투성이의 지뢰밭을 걸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상화폐는 걸림돌일까? 아니면 디딤돌일까? IT와 DT는 어떨까?

내가 걸림돌에 넘어진다면 뒤늦게라도 그것이 나에게 디딤돌이 되어줄까?

세상 살면서 걸림돌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걸려 넘어진 뒤에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또 걸림돌을 디딤돌로 활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술년은 역사적으로 어려움이 끝나가는 해라고 한다.

2018년에는 그동안 쌓인 어려움과 근심걱정을 모두 씻어내고 걸림돌을 디딤돌로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생기기를 기원한다.

 

김호택(연세소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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