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붕준의 '방송 타임머신'] 옛날 아나운서는 뭐든지 다 들어줬다?

이승규 기자

이승규 기자

  • 승인 2018-01-11 10:16
박붕준
박붕준(대전과기대 신문방송주간 교수/홍보전략센터장/전,대전MBC보도국장.뉴스앵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대학의 신문방송학 전공 시절 동대문운동장(지금은 없어짐) 야구장과 축구장, 장충체육관을 다니며 중계방송 실습 덕분에 처음 부임한 곳이 강릉 MBC다.

강릉은 '연·고전'처럼 당시 축구 열기로 강릉상고와 강릉농공고의 축구 정기교류전이 태동할 때다.

지금과 달리 아나운서와 기자 경계가 없고 라디오만 있을 때 해설자는 당연히 없다.



계속 말을 해야 하니 지금의 중계보다 더 힘들었다.

숨돌릴 시간은 '설악산의 맑은 물로 빚어진 00 소주' 스파트 광고가 송출될 때뿐! 하숙집 아주머니가 말한다.

"총각! 꼭 이기게 해줘!"

내가 무슨 재주로 이기게 하나! 지더라도 편파 중계방송을 하는 수밖에….

"해설자도 없는데 어때!"

심판이 하숙집 아주머니가 부탁한 팀에게 파울 호루라기를 불면 중계방송 맨트는 곧바로 "아! 심판이 너무 하네요. 이러면 안 되죠! 중계방송 하다 하다 이런 경기는 처음이네요! (사실 중계방송은 처음)"

나름 열심히(?) 하숙집 아주머니가 응원하는 팀에 유리하게 중계를 했지만 아쉽게도 아군(?) 팀이 졌다.

텔레비전 수상기가 귀한 시절 때다.

해외 중계가 안 될 때 중계방송의 대가(?)인 이 모 아나운서가 권투 중계를 했다.

우리 선수가 맞을 때는 "가벼운 잽을 허용하는 우리 선수", 상대방에게 잽을 넣을 때는 "강타 강타"를 반복했다.

우리 선수가 지면 편파 판정이라고 우기며 애국심에 호소했다. 라디오 중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강릉 경포대해수욕장에서 납량특집으로 희망곡을 우편엽서로 받아 방송하던 시절 서울에서 친구들이 놀러 와 어니언스의 '편지'를 틀어(?)달란다.

나는 "우편엽서가 대수냐. 내 친구가 우선이지"하며 '찌직' 소리라는 LP판이지만 원하는 대로 다 틀어주었다. 당시 졸자(?) 방송인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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