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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신춘문예에 당선한 제자에게

김완하 시인·한남대 국문창작과 교수

정성직 기자

정성직 기자

  • 승인 2018-01-23 06:46
김완하
김완하(시인·한남대 국문창작과 교수)
황금 개띠, 황금 개띠 하다 보니 세상이 다 누래 보인다. 여기도 개띠, 저기도 개띠. 세상이 온통 개띠 판이다. 그러니 나도 올해의 주인공 개띠다. 새해가 열리기 바쁘게 질주하는 이 속도. 어느새 1월도 훌쩍 날아올라 하순으로 치닫고 있다. 자칫 이렇게 어리부리 하고 있다 보면 시간은 금방 3월로, 6월로, 9월로 치달릴 게 분명하다. 그렇게 '우물쭈물하다 내 그럴 줄 알았다'고 한 것은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에 쓰인 말이라던가. 그래, 이제 정신을 바짝 차리자. 구두끈을 조이자. 발걸음의 속력을 조금 더 높이자.

그러나 돌아보니 지난해 말에는 큰 경사가 있었다. 제자 김선우 군이 변선우라는 필명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당선했다. 시인 선생이 제자가 시인이 될 때의 기쁨은 정말 설명이 잘 안 된다. 그것도 7000~8000편의 작품이 투고되는 신춘문예에서라니. 그동안 그 기쁨에 취해서 조금 얼쩡대고 있었다. 선우 군은 1993년생이니 이제 갓 스물넷이다. 동명의 시인이 있어서 어머니의 성을 따 필명을 삼았다. 지난 12월 말경에 전해온 당선 소식은 정말 지쳐가고 있는 연말 분위기에 반짝 전깃불을 켜는 바로 그것이었다. 오호 쾌재라. 이런 일도 있구나. 예전에도 여러 명의 제자가 이미 신춘문예에 등단을 했으나 이번에는 좀 달랐다. 지난번에 등단한 제자들은 모두 20대 후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변선우 군은 이제 20대 초반으로 깜짝 등장한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영국 시인 바이런이 말했다고 했지. 아침에 일어나니 내가 유명해져 있었다고. 신춘문예도 그런 것이다.



아직도 이렇게 호들갑을 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선우 군은 하루도 빠짐없이 시를 한편 씩 써왔다고 했다.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에 입학해서도 매주 시를 한편씩 쓰며 집중적으로 합평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선우 군을 비롯한 대학원생들의 성장은 나를 놀라게 했다. 그동안 나에게는 등단과 관련해 그래도 20대 후반은 되어야 시가 성숙될 수 있다는 다소의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선우 군은 그것을 여지없이 깨버리는 쾌거로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새해부터 너무 제자 자랑만 늘어놓은 건 아닌지. 그러나 기쁨은 언제라도 나누면 배가되는 법. 신춘문예가 좋기는 정말 좋다. 연말에 한해를 결산하며 큰 기쁨을 전해주더니 또 새해 벽두를 활기차게 열어 새해를 그야말로 벅찬 감격으로 밀고가게 하니 말이다. 제자 김선우, 시인 변선우 군 다시 축하한다. 올해는 그 기쁨을 살려서 자네도 더 줄기차게 달리는 한 해가 되기를 빈다. 자네의 그 열정과 순발력으로 올해도 자네의 해로 만들기 바란다. 자네의 능력이라면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나도 어느새 시인으로 등단한 지가 30년이 지났다. 다시 등단할 때의 초심을 떠올리며 새로운 마음을 다지고 있다. 올 봄에는 여섯 번째 시집도 내고 좀더 시와 가까지려 다짐하고 있다. 불란서의 시인 말라르메는 백지의 공포라는 말을 통해 시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힘겨움을 고백했다. 그가 공포를 느낀 백지는 시인이 붓을 들어 칸을 메워 나가야 하는 원고지에 해당하지만, 그것은 시인이 짐 지고 살아갈 할 삶의 백지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시인에게는 그가 살아갈 시간의 백지와 시가 씌어 질 원고지 사이에 변증법적인 관계가 설정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삶의 고통과 시적 창조의 고통을 동시에 짐 지고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이 시인들에게는 역설로 작용한다. 바로 그 고통이 시인에게는 기쁨이자 영광으로 다가오는 까닭이다. 시인은 오히려 어두운 현실 위에서도 그것을 딛고, 더욱 빛나는 언어의 광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시의 진정한 역설적 의미와 예술적 가치란 바로 그것이다. 선우군. 자네에게도 그 영광의 순간들은 바로 앞에 있다.

김완하 시인·한남대 국문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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