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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15. 그들이 부동산 투기를 했더라면

약팽소선(若烹小鮮)의 조건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18-01-25 00:00
트라야누스
로마황제 트라야누스
트라야누스(Marcus Ulpius Trajanus)는 로마 황제(재위 98∼117)였다. 그는 탁월한 지략으로 로마제국 최대의 판도를 과시하였다. 칭기즈 칸 (Chinggis Khan) 이전으론 그가 단연 발군(拔群)의 황제라고 칭송되었다.

원로원과의 협조 자세를 유지하고 빈민 자녀의 부양정책과 이탈리아의 도시, 농촌 회복시책을 추진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로마제국의 영역을 확장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도나우강을 건너 다키아(현재 루미니아 일대)를 정복하여 속주로 하였으며, 또 남쪽으로는 사하라 사막의 경계까지 진출하여 요소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다시 동방으로는 나바타이 왕국을 병합하여 속주 아라비아로 하였으며, 아르메니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 파르티아 군(軍)을 몰아내고 아시리아까지도 속주로 만들었다.



파르티아 왕국(현재 이란)을 정복하고 수도인 크테시폰을 함락시켰다. 이것은 로마제국 역사상 동방으로 가장 멀리까지 진출한 것이었다. 로마제국 최대의 판도를 과시한 것도 이때의 일이다.

트라야누스는 이 외에도 치적을 잘하여 도서관과 극장, 욕장, 광장 등을 만들고 백성을 사랑하여 가난한 사람을 돕고 보호하였다는 칭찬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아담쿠리 시에 있는 50의 트라야누스(개선 기둥)는 황제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는데 이는 트라야누스가 '최선의 원수(元首)'라는 찬사를 받았다는 방증이다.

서울 강남의 부동산 시장이 예사롭지 않다. 강력한 규제대책을 내놓았던 정부로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의 부동산 시장 '들불'에 그 불을 끄느라 경황까지 없어 보이는 모양새다. 지난해 이른바 '8·2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강남의 집값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는 이 대책을 통해 재건축 및 재개발 아파트 입주권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입주권의 바뀜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프리미엄이 과도하게 붙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 애초 기대했던 규제효과였다. 하지만 이 규제가 오히려 거래 품귀현상을 불러왔다.

이미 개발 포화상태인 강남은 재건축 및 재개발이 거의 유일한 주택공급 방안으로 꼽혔다. 이런 상황에서 재건축 단지 입주권 거래가 묶이면서 강남에서는 매물이 자취를 감춘 상태가 돼 버렸다.

이에 반해 학군과 교통망, 주변 편의시설 등 입지적 장점이 많은 강남지역 실 거주 수요는 꾸준히 많다는 데서 정책의 오류가 발견되었다. 강남이 최고의 학군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명문대 진학률이 다른 학군에 비해 월등하게 높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시장에 공급(매물) 물량은 급감한 가운데 집을 사려는 수요는 급증했다. 덩달아 실제 거래가 이뤄지지 않아도 집주인들이 부르는 가격(호가)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는 얘기다. 이러한 현상에 필자는 1월 19일자 동아일보 오피니언 면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다.

- "1월 13일자 8면 커버스토리 '강남 집값상승을 보는 4人4色'을 보며 화가 났다. 정부가 강압적으로 정책을 추진했지만 부수적인 풍선효과가 발생한다는 사실은 간과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사에서 심리-사회학자들이 지적했듯 집값 상승을 억지로 누르려 하면 되레 반발 심리만 부추기게 된다.

집을 한 채 이상만 소유했어도 마치 범죄자인 양 몰아붙이고 있는 게 현 정부의 주택정책 기조이지 싶다. 그러면서도 청와대와 총리실을 비롯한 중앙부처의 1급 이상 고위 공직자 10명 가운데 4명은 주택을 2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인 것으로 드러났다는 뉴스에 국민들은 분노한다.

(차라리) "강남을 없애라"는 주문은 그 분노가 극단으로 치달았다는 방증이다. 없이 사는 서민은 평생 만져볼 수 없는 만큼의 금액이 일주일 사이에 오른다는 강남 집값은 정상적 시장논리에도 반하는 불안감의 가속이다. 시장의 원리는 그냥 두어야 스스로 조정되는 법이다." -

강남의 집값이 엄동설한을 비웃듯 오히려 뜨겁게 불붙자 정부는 또 다른 처방까지 꺼내들기에 이르렀다. 국세청이 부동산 거래를 통한 탈세혐의에 대해서 끝까지 추적해 납세 기강을 바로 세우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게 그 첫째다.

이에 더하여 부동산 보유세 인상 방안까지 본격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는 뉴스는 현 정부가 과열되고 있는 부동산 시장을 얼마나 분기탱천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가를 발견하게 된다.

직업조차 없는 젊은이가 버젓이 고가의 외제차를 굴리고 있는 현상은 급기야 우리나라 수입차의 판매대수를 일본시장마저 역전시키는 아이러니로까지 발전했다. 하긴 집을 수십 채나 지니고 있는 부자 부모를 둔 자녀라고 한다면 그깟 외제차 정도야 누워 떡먹기이긴 하겠지만.

여기서 새삼 우리의 자랑스런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李會榮) 선생의 족적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의 10대손으로 명문세가(名門世家)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상을 보는 시각과 선각자적인 안목이 뛰어났다.

약관 20세부터 신지식을 받아들여 평민적 사고(思考)와 행동으로 우리의 독립운동사에 획기적인 업적을 남겼다. 1910년에 일제에 의해 국치(國恥)를 당하자, 우당을 비롯해 형 건영(健榮) 석영(石榮) 철영(哲榮)과 아우인 시영(始榮) 호영(頀榮) 등 일곱 형제 중에 6명의 형제 50여 가족이 모두 만주로 떠난다.

조선 최고의 부자가문으로도 꼽혔던 이회영 선생은 항일투쟁의 기틀을 마련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재산(부동산 포함)을 헐값에 처분했다. 이는 우리 역사상으로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가문 차원의 헌신이었다.

우당 선생의 그러한 애국정신과 적극적 실천이 없었던들 신흥무관학교의 설립은 물론이요 거기서 배출된 숱한 독립운동가들 역시도 불가했을 것이었다. 이처럼 세독충정(世篤忠貞)으로 나라를 위해 열정을 바친 우당 선생에게 고종은 "선생은 실로 백사의 후예"라고 칭찬하며 벼슬까지 제수했으나 강직한 선생은 그 마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처럼 명예나 지위에 대한 욕심이 없어 선생은 평생을 독립운동과 혁명가의 길을 걸었음에도 어떤 단체와 모임에서도 장(長)을 맡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트라야누스는 영토를 가장 많이 넓힌 황제였다.

하지만 그가 만약에 오늘날의 부동산 졸부답게 투기나 일삼고 개인적 욕심에만 혈안이 되었더라면 어찌 지금껏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까! 트라야누스가 되었든 우리네 서민이 되었든 간에 불변한 건 생로병사의 수순에 따라 결국엔 죽는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죽을 때는 고작 한 평의 땅도 넓다. 요즘엔 그마저도 화장과 수목장 등의 장례로 치환되는 까닭에 때론 한 뼘의 땅조차 불요(不要)하다. 개인적으로 부동산 다(多) 주택자와 그로 말미암은 세금 탈루자를 경멸한다.

그들이 우뚝하기에 정부서 아무리 고강도의 처방을 내려봤자 그들은 메뚜기처럼 옮겨 다니며 지금도 부동산 투기에 혈안이 돼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약팽소선(若烹小鮮), 즉 생선(生鮮)을 익히려고 자꾸 뒤집다 보면 오히려 생선살이 다 부서져버리듯 지나친 간섭보다는 차라리 가만히 두면서 지켜보는 것이 낫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단, 여기엔 한 가지 조건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그건 바로 1가구 1주택에 한하여서는 '약팽소선'의 너그러움을 견지하자는 주장이다. 다 주택자 역시 정당하고 온당한 세금을 납부하는 경우 역시 이 범주에 넣으면 된다.

현 정부의 정책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은 비단 이뿐만 아니다. 경비원으로 일하던 지인이 작년에 해고되었다. 이는 올부터 실시되는 최저임금의 인상을 염두에 둔 용역회사의 꼼수에서 기인했다고 한탄했다. 그렇게 실직자가 되는 바람에 심지어 담뱃값조차 없다고 하소연하기에 몇 번이나 주머니를 찔러줬다.

그 지인이 최근 취업을 했다며 다시 찾아왔다. 하지만 휴식 시간 연장 따위의 편법으로 최저임금의 인상은커녕 외려 이전보다 적은 급여를 받고 있다며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이 현실화되면서 불어 닥친 부작용은 무수하다.

경비원들의 대량 해고와, 이를 대체할 무인 경비시스템의 도입에 이어 편의점과 프랜차이즈 등의 업자들 역시 아르바이트생을 내보내고 주인이 매장을 지키거나 아예 무인화 영업 전략으로 돌변한 곳도 부지기수다.

이러한 최저임금의 인상으로 말미암은 부작용은 또 다른 부정적 풍선효과로 드러나고 있다. 잇따른 가격 인상 외에도 부익부빈익빈의 심화가 더욱 도드라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명분은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에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었지만 막상 현장에선 반대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대한민국의 고용시장마저 동결시키고 있음은 포퓰리즘 대선공약이 불러들인 필연적 부작용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추가 부담이 올해만 16조 원이라고 한다.

대선 공약대로 최저임금이 2020년에 1만 원까지 되면 기업의 추가 부담은 81조 원이나 된다고 하는데 벌써부터 이 지경이거늘 그때는 과연 무슨 일이 또 벌어질는지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오싹하다.

아무튼 부동산 투기로 말미암은 강남의 부동산 가격 광풍을 보자면 새삼 그렇게 트라야누스와 이회영 선생께 부끄럽다. 집은 한 채로 족하다. 강조컨대, 정부의 부동산 대책 기조가 '약팽소선'이 어렵다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 싶다.

실제 거주 목적의 주택 한 채만 빼고 나머지 소유 주택에 한하여서는 과중한 보유세를 매기면 된다. 그럼 뉘라서 부동산 투기를 할까! 건설회사에선 당연히 반발하겠지만 이러한 불요불굴(不撓不屈)의 극약처방이 동원되지 않는 이상 부동산 투기 전문의 '메뚜기족'들은 결코 박멸(撲滅)할 수 없을 것이다.

가뜩이나 좁아터진 국토 면적의 국가에서 부동산 투기는 사실상 범죄라는 인식의 고착화가 시급하다.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전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 역시 완급(緩急)을 조절할 필요성이 다분하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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