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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대전다운 도시브랜딩

이성만 배재대 교수

이상문 기자

이상문 기자

  • 승인 2018-01-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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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만 배재대 교수
21세기의 특징 중 하나가 있다. 국가가 아닌 도시가 지역 간 활동의 주역으로 떠오른 점이다. 도시들이 경쟁 우위를 위해, 각 분야에서의 최적성을 알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강구할수록 그 도시에 최적화된 도시브랜딩 전략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도시의 이름을 듣거나 읽으면 그 무엇을 떠올리게 된다. 이런 연상 작용에는 거대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가치가 중요한 역할을 할 때가 많다. 그러나 도시의 이미지와 평판에 얼마나 많은 일자리와 기업·기관들의 이해가 걸려 있는지를 인식하는 도시 지도자는 별로 없는 듯하다. 도시의 이미지와 평판은 대부분 평가나 관리의 대상이 안 되기 때문이다. 측정되지도 않고 대차대조표에 나타나지도 않고 시청 관리자나 선출직 공직자의 직무 평가에 반영되지도 않는다. 도시의 이미지는 그 도시의 가장 귀중한 자산이다. 이를 개발하고 관리하고 보호하기 위한 도시브랜딩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로마는 콜로세움, 뉴욕은 자유의 여신상처럼 누구나 등식처럼 떠올리게 되는 그 도시의 이미지가 있다, 도시브랜딩에 성공한 사례들이다. 그렇다면 대전은? 없다. 적어도 필자의 생각은 그렇다. "it's Daejeon"? 슬로건일 따름이다. 이에 걸맞은 뭔가가 있어야 한다. '과학도시'? 퇴색된 지 오래다. 어지간한 도시들은 첨단과학도시가 슬로건이다.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다. '엑스포 도시'? 포스트 엑스포 전략 부재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전부르스'? 들어본 지 오래다. 그나마 이 무형 브랜드는 유형화되었다. 대전역 광장, 성심당 상품 포장지 등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대전부르스'의 '부르스'는 진정한 의미의 블루스(Blues)와도 많은 차이가 있다. 개념도 원래의 의미를 벗어났다. 미국의 블루스가 빠르고 진취적이라면 한국의 그것은 느리고 탄식 조다. 게다가 춤곡 정도로 부정적 의미가 강하게 스며들었다. 미국은 록 음악의 뿌리 중 하나로 흑인 음악이던 블루스를 꼽는다. 블루스는 스윙 재즈의 영향을 받아 리듬 앤 블루스로 창의적 진화를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로 대표되는 초기의 로큰롤을 떠올리면 된다. 이후 주변 음악들도 블루스라는 '플랫폼'에서 융합 과정을 거쳐 새로운 음악 장르들로 진화를 거듭했다.

대전의 도시철도를 보자. 도시철도 1호선은 1991년 건설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1996년 착공했지만 2007년에야 완전히 개통했다. 16년이 걸렸다. 2호선은? 언제부터 담론의 대상이 되었는지 기억하기도 힘들다. 2001년이니 17년이나 지났다. 그동안 선거철만 되면 기적 소리 한 번 울리고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 열차"처럼 사라졌다. 신년 벽두에 또다시 이 문제가 언론에 등장했다. 예비타당성을 재조사하겠다는 소식이다. 대전 시민들만 절박함에 소리치며 붙잡아도 "영시 오십분"에 무정하게 떠나가는 "목포행 완행열차"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독일 중부의 베르기셰스 란트 지역에는 부퍼탈(Wuppertal)이란 도시가 있다. 이 지역의 최대도시이자 이 지역의 경제, 교육, 산업 및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지정학적으로 대전과 많이 닮았다. 역사가 일천한 점도 비슷하다. 부퍼탈이 도시로서 지도에 등장한 때가 1930년이니 90여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대전도 도시로 승격된 때가 1949년이었으니 70여년에 불과하다. 부퍼탈은 대전과 확연히 다른 것이 있다. '슈베베반(Schwebebahn)'이란 독특한 현수식 모노레일이다. 매달려서 이동하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생긴, 둘도 없는 모노레일이자 가장 오래된 도시철도다. 독일제국 시기인 1901년 3월 1일에 개통했으니 부퍼탈이란 도시가 성립되기도 전이다. 개통식 때 황제 빌헬름 2세가 탑승했던 차량이 '카이저바겐'이라는 '황제 차량'인데,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 영업 중이다. 노선은 대부분 도시를 가로지르는 부퍼 강을 따라 건설되었다. 지금 봐도 최첨단이다. 매달려서 가니 소음도 적고 선로가 차지하는 면적도 적고 곡선반경도 적고 친환경적이기까지 하다. 당연히 부퍼탈의 도시브랜드가 됐다.

대전은 교통의 중심지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세상의 모든 친환경 교통수단들을 맛볼 수 있는 생태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다. 2호선도 '부르스'가 아니라 '블루스'라는 창의적 플랫폼에 들어간다면 대전다운 도시브랜딩 전략을 세우기 위한 유용한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성만 배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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