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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18. 주원장이 현모양처 마 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일반천금' 이상으로 보은(報恩)한 명 태조 주원장의 의리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18-02-07 00:00
'도둑'은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따위의 나쁜 짓, 또는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밥도둑'은 입맛을 돋우어 밥을 많이 먹게 하는 반찬의 종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밥도둑의 대명사로까지 간주되는 제주 특산물 옥돔구이는 '술 도둑'에도 다름 아니다. 몸길이가 30-60cm가량인 바닷물고기인 옥돔은 눈이 크며 옆으로 편평한 모습이다. 몸은 황갈색을 띠고 있으며 옆구리에 희미한 홍갈색 가로줄이 보인다.

바닥이 모래와 갯벌로 이루어진 수심 100∼300m 정도의 따뜻한 수역에 서식한다는 이 녀석은 새우류와 게류, 조개류 등을 잡아먹는다고 알려져 있다. 주로 우리나라 제주도와 남해 등에 서식하는데 제주도 근해에서 잡히는 옥돔이 상종가를 기록한다고 한다.



다른 생선과 마찬가지로 옥돔 역시 구이와 찜으로 애식(愛食)한다. 특히나 옥돔구이는 제주 특산 요리로 유명하다. 오는 4월의 결혼식을 앞두고 아들이 며느릿감과 함께 제주도로 웨딩촬영을 다녀왔다.

거기서 구입한 옥돔이 택배로 왔기에 어젠 옥돔을 한 마리 구웠다. 따로 소금을 뿌리지 않아도 짭조름한 맛이 진짜 별미였다! 그 맛에 반해 소주도 물처럼 마구 들어갔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잘 먹자니 새삼 효자 아들이 고마웠다.

옥돔구이 인증샷을 찍고 아울러 문자까지 보냈다. "아들 덕분에 오늘 아빠 입이 호강했다! 고맙다!! 참~ 사돈어르신 댁에도 보내드렸겠지?" 금세 즉답이 왔다. "그럼요~ 맛있다고 칭찬하시어 기분까지 좋았습니다. ㅎㅎㅎ"

평소 아들에게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터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딸 역시 마찬가지다. 칭찬이란 자녀가 무럭무럭 잘 자라는 비료라는 걸 진작부터 터득한 때문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지만, 비난은 영웅도 잠자게 할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칭찬은 때론 상상할 수조차 없는 엄청난 결과로까지 되돌아오는 때문이다. 이런 관점의 접근에서 오늘은 한신의 '일반천금(一飯千金)' 이상으로 은인에게 보은(報恩)한 명(明) 태조 주원장의 경우를 살펴보고자 한다.

주원장
명나라 태조 주원장/출처=위키피디아
중국역사상 어떤 왕조도 천년을 넘기지 못했다. 그처럼 부침이 심했던 이유는 툭하면 통치자가 백성을 상대로 악행을 일삼은 때문이다. 명 태조 주원장(明 太祖 朱元璋)은 실로 파란만장의 삶을 살다 간 희대의 풍운아였다.

그가 태어난 1328년은 칭기즈칸과 쿠빌라이를 이은 원(元) 나라 황실이 혼란에 빠졌던 때였다. 대저 봉건시대에는 통치자의 자질과 능력이 백성들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성군을 만나면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반대로 폭군을 만나면 고통의 질곡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명나라는 홍무(洪武) 원년(1368) 명 태조 주원장이 건국한 이래, 숭정 17년(1644) 숭정제 주유검의 자살로 패망할 때까지 276년 동안 지속된 한족 정권 최후의 봉건제국이었다. 원 제국의 정권이 불안정해지자 중국의 각 지방에서는 그동안 억눌려 있던 한족들의 반발이 점점 뚜렷해졌다.

그리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며 여기저기서 반란의 거병을 하는 이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그 즈음 정치와 경제가 모두 혼란에 빠진 원나라가 맥을 추지 못하게 되자 전국은 무법천지가 되어갔다.

당연한 상식이겠지만 난세에는 부자들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힘든 법이다. 떠돌이 소작농 주세진의 여덟 번째 아들이었던 중팔(후일 '주원장'으로 개명했다)은 그야말로 참담한 유년 시대를 보내야 했다.

가렴주구와 심한 가뭄에 더하여 돌림병의 창궐로 인해 중팔의 부모와 큰형까지 죽는다. 장례를 치르려 하였으나 돈이 없으니 그마저 여의치 않았다. 길거리마다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나뒹굴고, 심지어 백골에까지 개들과 새들이 몰려들어 남아있는 살점을 물어뜯는 아비규환의 현실에서 중팔은 낙담의 늪에 빠져든다.

이때 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은혜를 베푼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마을 지주 유계조(劉繼祖)였다. 중팔의 가족이 떠돌이 소작농인 데다가, 더욱이 부모까지 비명횡사한 마당이었거늘 하지만 유계조는 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자기 땅에 장례를 치르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 고마움을 잊을 수 없었던 주원장은 후일 황제로 등극한 뒤 파격적 보상을 하기에 이른다. 유계조를 '의혜후'로, 그의 아내는 '후부인'으로 책봉하는데 그 덕분에 일개 향촌의 지주에 불과했던 유계조와 그 식솔들은 명나라 천하에서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는 <초한지>의 중심인물이기도 한 대장군 한신의 '일반천금(一飯千金)' 고사를 뛰어넘는 시혜(施惠)의 압권이라 하겠다. 위에서 아들이 보내준 제주옥돔으로 즐거움과 행복을 만끽했음을 토로했듯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선의로 베푼 사소한 선행이 때론 훗날 어떤 복을 가져다 줄 지 모르는 게 세상의 이치다.

물론 윗글의 토대는 부자유친(父子有親)의 수순과 정서를 좇은 당연지사(當然之事)의 귀결이긴 하겠지만. 우리 속담에 '부잣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줄을 잇지만 막상 부자가 죽으면 개도 안 간다'는 것이 있다.

이는 감탄고토(甘呑苦吐)와 비슷한 사자성어 염량세태(炎凉世態)의 차가움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표현이다. 따라서 갈수록 이기주의가 심화되고 있는 현대에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다시 주원장의 입신양명(立身揚名) 시절로 돌아가 보자. 살 길이 막연하자 그는 황각사(皇覺寺)에 들어가 중이 되었다. 탁발승을 하면서 방방곡곡을 떠돌던 그는 토호 곽자흥이 반란을 일으키자 "때는 이때다!" 싶어 그의 휘하에 들어간다.

거기서 그는 발군의 활약과 공명정대함의 일관으로 곽자흥의 눈에 들었다. 급기야 점점 세력이 커지는 주원장을 견제도 할 겸, 또한 더욱 돈독한 관계의 도모를 목적으로 곽자흥은 자신의 양녀인 마 씨(馬氏)를 주어 사위로 삼는다. 이는 예부터 '정략결혼'이라는 건 그 이상의 안전판(安全瓣)이 없음을 간파한 때문이었다. 그처럼 명 태조의 조강지처가 된 마 씨(1332~1382)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부친의 절친한 친구인 곽자흥의 양녀로 자랐다.

머리가 총명하고 성품이 온화했으며 침착하여 양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결혼한 뒤에도 주원장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랐으며 내조에도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주원장이 전장을 누빌 때에도 언제나 병사들을 위하는 일이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아 칭찬이 자자했다.

그녀는 자식농사에 있어서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마 황후는 친아들 다섯을 두었는데 막내아들 주숙이 방탕한 기질이 있어 근심거리였다. 그가 주정왕(周定王)에 책봉되어 떠날 때 그의 처였던 강귀비에게 자신이 입고 있던 낡은 베옷과 몽둥이를 건넨다.

그러면서 강조하길 "저 녀석이 잘못을 저지르면 이걸로 준열히 꾸짖거라.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즉시 나에게 보고하라!"고 했다 한다. 가히 '맹모삼천지교' 이상의 올바른 자식교육이 아닐 수 없었다.

덕분에 주정왕은 말년에 [보생여록] 등의 의학서적을 저술할 정도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부모가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경거망동을 일삼는 젊은이가 이따금 뉴스를 달궈 세인들이 분통을 터뜨리곤 했다.

만약에 주원장이 현모양처 마 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훗날의 황제 등극 역시 그림의 떡이 되었을 것이듯 아무리 떵떵거리는 부자라 할지라도 정작 올바른 '자식교육'에 실패한다면 그 욕은 고스란히 그 부모와 부자가 받는다는 건 상식이다.

명 태조는 자신의 아내를 당 태종 이세민의 부인이었던 장손황후(長孫皇后)와 같이 어질고 후덕한 황후라고 칭찬했다. 주원장은 황제가 된 후 잔인한 방법으로 수많은 관리들을 죽이는 등 중국역사상 보기 드문 공포정치를 폈다. 그러나 마 황후가 살아있을 적엔 그녀의 논리정연한 만류 덕분에 사지에서 살아난 공신들도 많았다고 한다.

마 황후는 "교만과 방종은 사치에서 나오고 위태로움과 망함은 사소하고 하찮은 일에서 기인한다"며 주원장을 적극 보좌했다. 그녀가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자 명 태조는 통곡했고 후임 황후의 책봉도 하지 않았다.

재계(齋戒 = 죽은 사람을 제사 지내기 위하여 육식 따위의 음식을 삼가며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부정(不淨)한 일을 멀리함)의 차원에서 주원장은 검소하고 절약했으며 음주가무 역시 멀리 했다.

아들이 결혼을 앞두게 되면 참한 며느리를 들이고픈 건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의 희망이다. 효자 아들에 버금가는 착한 며느리가 이제 두 달 후면 우리 집에 입성한다. 끝으로 '좋은 아내 나쁜 아내'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맺는다.

- 좋은 아내는 천사가 되려고 노력한다. VS 나쁜 아내는 자기가 천사라고 생각한다. 좋은 아내는 집안에서나 집 밖에서 남편에게 똑같이 대해준다. VS 나쁜 아내는 집안에서는 악악거리지만 밖에만 나가면 천사가 된다. -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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