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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 영어 조기교육 해야 하나?

김호택(연세소아과 원장)

고미선 기자

고미선 기자

  • 승인 2018-02-06 00:00
김호택(연세소아과 원장)
김호택(연세소아과 원장)
인도에서 Santosh라는 이름의 손님이 찾아왔다. 사업차 밀양을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나와 세계적 봉사단체인 국제로타리를 인연으로 페이스북을 통해 친해진 동생이 선물을 전해주라고 해서 들렀다고 했다.

오랜만에 못 하는 영어로 얘기 하려니 힘이 들었지만 반가웠고 고마운 마음으로 대여섯 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 때 느낀 것이 영어 발음의 문제이다. 인도 사람들의 영어 발음을 우리는 알아듣기 힘들다. 자기들도 시원찮은 나의 영어 발음이 좋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정작 미국 본토박이들은 인도 사람들의 영어를 더 잘 알아듣는다.



그들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역사적 어두움을 감추지 않고 계속 영어를 적극적으로 가르친다. 우리가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난 후 일본어를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런데 발음은 '네이티브'가 아니다. 우리가 네이티브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려고 수많은 노력과 시간과 돈을 쓰고 있는 것과도 대조적이다.

대신 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영어를 참 쉽게 얘기한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우리가 보기에는 엉터리 발음의 인도 영어에 더 익숙하다.

몇 번 미국을 방문하면서 택시 탈 기회가 있는데, 대부분 흑인 아니면 인도인이 택시를 몬다. 그 택시 기사 인도인들도 영어 발음이 시원치 않기는 마찬가지인데, 신통하게도 현지 미국인들과 더 쉽고 편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40여년 전, 학창 시절에 '우리가 세계와 통하려면 언어를 알아야 하기에 세계 언어인 에스페란토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다. 나도 친구의 적극적인 권유로 한두 차례 강의에 참석했다가 놀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멀어진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에스페란토어의 취지 자체는 대단히 훌륭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고 어떻게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고 상대방과 상대 국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는 화두는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새로운 제안을 한 것이 에스페란토어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영어의 영향력이 점점 더 강해졌고, 지금은 영어가 에스페란토어가 되었다. 정작 에스페란토어는 일부에만 통용되면서 사장되면서 그 자리를 영어가 차지했다. 한국 사투리, 일본 사투리, 인도 사투리의 영어가 생긴 것이다. 언어로만 얘기한다면 전 세계가 미국과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우리는 영어를 잘 하는 자식들을 갖고 싶은 소망을 갖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영어교육을 금지시킨다고 큰소리를 쳤다가 여론이 나빠지자 슬그머니 한 발을 빼는 해프닝이 있었다. 뉴스 보도만 보고 교육부의 의도를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교육적으로 우리 말도 제대로 배우기 전에 영어부터 배운다면 두 가지 언어가 아이의 머릿속에서 충돌하면서 언어 습득에 혼선이 올 가능성은 있다.

그렇지만 교육열이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자기 자식에게 영어를 빨리, 그리고 잘 배우게 해서 좋은 대학 가고 훌륭한 인물로 만들고자 하는 열의에 찬 학부모에게는 대단한 저항을 불러 일으킬 일이라는 것은 예상했어야 했다.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영어 한 마디 못 해도 평생 잘 사는 사람도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영어 배울 시간에 자신에게 도움이 될 다른 공부를 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인생은 새옹지마이고, 인생사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영어를 배우는 것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필요 없는 시간낭비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서로 상의하고 토론하면서 합의점을 찾아서 진행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우리에게는 너무 없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작은 사건이 바로 영어 조기교육 금지조치였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씁쓸하다.

민주적 절차라는 것은 느리고 비효율적이지만 결국 개인과 사회에 이로운 제도라고 말은 하지만 우리는 모두 '빨리빨리'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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