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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평창의 힘으로 평화의 창을 열자

김완하(시인·한남대 국문창작과 교수)

고미선 기자

고미선 기자

  • 승인 2018-02-20 07:52
김완하
김완하(시인·한남대 국문창작과 교수)
오후의 포근한 햇살을 받으며 모처럼만에 아파트 뒷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겨울동안 움츠리며 지내다가 한껏 풀린 햇살의 밝은 미소가 나를 숲으로 이끈 것이다. 숲 사이를 빠져나가던 겨울바람도 이제 조금 잦아들고 한적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고요 속에서도 설날 아침부터 들려온 금메달 소식과 그 큰 함성이 되살아났다. 그야말로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설의 가장 큰 선물이 되기에 족했다. 통쾌함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평창에서 펼치고 있는 동계올림픽은 얼마나 크고도 중차대한 일인가. 1988년에 하계 올림픽을 연 이후 30년 만에 동계 올림픽이 열리는 것이니. 우리 주변은 온통 평창 올림픽 열기로 가득 하고 각국은 치열한 금메달 경쟁으로 각축전을 펴고 있다. 한국의 금메달에 온 국민들은 하나 되어 환호성을 질렀다. 17일 동안의 동계올림픽 기간은 어쩌면 세계도 정쟁을 멈추고 스포츠 정신과, 평창이 내건 평화 아래 하나가 되는 듯해 보인다. 스포츠 정신과 가치는 이 하나만으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북한에서 고위급 인사가 개막식에 참석하고 북한의 선수들이 참가하고 또 남북한 아이스하키가 단일팀을 구성한 것을 보면 스포츠가 아니고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 벌어진 셈이다.

그런데 평창 올림픽이 끝나면 또 우리 사회는 얼마나 대립의 장으로 굴러 떨어질 것인지. 당면한 문제를 두고 얼마나 각을 세우며 여야는 서로 다른 의견을 내세워 다툴 것인지. 우리 사회는 얼마나 자신의 입장을 고집하며 상대방을 무너뜨리려 아우성 칠 것인지 자못 염려스럽기도 하다.



비탈을 오르는 동안 주변의 나무들은 서로 다른 상대방의 몸짓을 눈여겨보면서 마음을 열고 있었다. 숲은 3월의 봄빛을 피워내 12월 한겨울을 넘기까지 달려갈 출발선에 스케이트 칼날을 대고 신호음이 울리기만을 기다리며 자못 긴장과 기대감으로 차 있었다. 그러고 보니 숲의 나무들도 침묵 속에서 한껏 올림픽 경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숲이 펼치는 경기는 사람들처럼 어느 하나가 이기는 그러한 경쟁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가는 경기였다. 그래서 어쩌면 숲이야 말로 올림픽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이 살아있다면 진정한 금메달리스트는 바로 이 숲이라며 기뻐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1896년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제1회 올림픽을 개최한 이후 쿠베르탱은 올림픽이 그가 바라던 소박한 인류의 제전으로서의 모습과 세계 청소년의 교육의 계기로서의 역할이 차차 퇴색해가자 1930년에 그 같은 경향에 정면으로 대결하는 '스포츠 개혁헌장'을 공표하였다. 이를 통해서 올림픽 정신의 변질을 비판하여 교육자로서의 주장을 관철하다가 1937년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가 살아가는 한 어쩌면 경쟁은 불가피한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경쟁 속에서도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깨끗한 스포츠 정신일 것이다. 그것을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새로운 기록을 향해 달리는 선수들에게 열광하는 것은 깨긋한 경쟁과 분명한 결과 때문일 것이다. 0,001초까지의 기록을 다투는 각축전에서도 정정당당한 도전과 깨끗한 승부는 정말 우리 모두를 들뜨게 한다.

올해 6월에는 지자체 단체장 선거가 치러질 것이다. 벌써부터 출마자들이 거론되면서 그들의 움직임이 드러나고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다. 평창의 효과는 세계를 평화와 함께 하는 축제의 장으로 불러들인 것 이상으로 한국 사회도 한 차원 성숙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쿠베르탱이 원했던 올림픽은 절대 승자만을 위한 잔치나 그 마당이 아니었다. 참여하는데 의미가 있는 게 올림픽 정신이라 하지 않던가. 그것이 진정한 축제일 것이다. 세계인들의 관심과 열정을 모아 그 안에서 세계가 하나 되는 장을 펼치며 평화를 모색해가는 올림픽. 이를 계기로, 더없이 각박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우리 사회는 반드시 그 순수 열정과 정당한 경쟁 정신을 조금만이라도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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