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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프레임 속 프레임

현옥란 기자

현옥란 기자

  • 승인 2018-02-2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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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회화는 닮았습니다. 프레임 속의 그림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회화가 정지된 그림인 데 비해 영화는 움직이는 그림(motion picture)입니다. 프레임은 선택과 배제의 경계입니다. 선택된 프레임 안쪽은 의미의 영역이 되고, 그곳에 그려진 것은 의미의 대상이 됩니다. 무엇을 택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어쩌면 이것이 회화든, 영화든 가장 본질적인 것일지도 모릅니다.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2003)는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동명 작품을 모티프로 한 것으로, 15년 만에 재상영되었습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원작 소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영화화한 것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그림이 정확히 언제 그려졌고, 작품 속 인물이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그리트는 가난한 화가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게 된 소녀지만, 실제로 베르메르는 화가일 뿐 아니라 화상(?商)으로서 평생을 부유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영화 역시 그림과 원작 소설을 소재로 한 허구입니다.



영화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라는 그림이 그려지기까지의 과정을 담았습니다. 스크린이라는 큰 프레임 속에 완성된 회화 작품의 작은 프레임이 담기게 됩니다. 하지만 정확히는 회화 프레임 밖으로 배제되었던 그림 속 인물의 이야기를 스크린 안으로 불러들인 것입니다. 즉 정지된 회화 작품에 시간과 이야기를 덧입혀 움직이는 그림으로 재탄생시킨 것입니다. 프레임 속 프레임이면서, 한편으로 프레임의 확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상상력과 고증, 재현이 활용되었습니다.

영화는 가난한 도자공예가의 딸인 한 소녀가 주인집 화가에 의해 아름다운 그림 속 여인이 되는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을 그린 그림을 바라보는 그리트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비록 주인 마님의 것이지만 진주 귀걸이를 한 자신의 모습을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사람이 어떻게 빛나는 존재로 거듭나는지를 목도합니다. 그녀는 그 순간 의미의 영역에 초대된 것입니다.

영화에는 그리트와 베르메르의 아슬아슬한 감정적 동요, 푸줏간집 청년과 그리트의 풋풋한 데이트, 그리고 물의 나라 네덜란드의 풍경들이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데뷔 초 스칼렛 요한슨의 빛나는 매력도 이 영화를 보는 큰 즐거움입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 박사)

김대중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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