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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권력과 민주주의

장수익 한남대 문과대학장

원영미 기자

원영미 기자

  • 승인 2018-03-15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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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익 학장
사전적으로 권력이란 누군가에게 그가 원치 않아도 어떤 행위를 하게 강제하는 힘을 뜻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든 원치 않는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이다. 인간은 자기 일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이를 인간 본연의 자기 중심성이라 한다면, 권력을 거부하고 자유를 추구하는 성향이야말로 모든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향이라고 하겠다. 강제가 아닌 자발성에서만 자신의 의미를 확인하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권력에 가장 좋은 것은 권력의 대상인 피 권력자가 자발적으로 권력이 원하는 행위를 할 때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사랑할 때지, 권력의 부림을 받을 때는 아니다. 자유가 전제되는 사랑과 달리 부자유를 전제하는 권력은 사랑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권력이 피-권력자가 자신을 따르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할까. 여기서 권력은 여러 수단을 강구한다. 첫 번째 수단은 대가 제공이다. 대가 제공의 약속은 피-권력자를 그나마 움직이도록 유혹할 수 있다. 하지만 대가 제공으로 피-권력자의 마음까지 살 수는 없다. 이때 피-권력자는 '돈 때문에' 또는 '자리를 지키려면' 등등의 핑계를 대면서 권력에 따르게 된다.



다음 수단으로는 억압이 있다. 억압은 사회적 관습이나 도덕을 빌미로 나타나기도 하고, 극단적으로는 생명에 대한 위협을 통해 나타나기도 한다. 이때 피-권력자는 '지금까지 그랬으니까' 또는 '남들도 다 하는데'의 생각으로 권력에 복종하게 된다.

세 번째 수단은 이데올로기인데, 이는 권력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도 하다. 이데올로기는 어떤 대상에 대한 특정한 판단을 하도록 피-권력자에게 명령하는 가치 체계지만, 정작 피-권력자는 스스로 판단한 것으로 간주하게 만드는 역설적 성격을 띤다. 이 자발성 아닌 자발성으로 인해 피-권력자는 권력의 가짜 주체가 된다. 이렇게 가짜 주체가 되면, 피-권력자는 이데올로기로 설명할 수 없는 현실을 겪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이데올로기를 가다듬어서 그 현실을 부정하거나 합리화한다. '아냐, 그럴 리 없어' 또는 '알고 보니 그런 거잖아'라는 생각으로 피-권력자는 이데올로기의 허점을 스스로 메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권력만이 과연 권력의 전부일까.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위에서 본 권력의 행태가 이어지기는 하지만, 현대사회는 그러한 권력이 아닌 새로운 권력을 꿈꾸는 데서 비롯한 사회이다. 이른바 민주주의라는 것이 바로 그러한 새로운 권력의 요체이다.

민주주의가 구상한 권력은 모든 이가 공평하게 나누어 가진 권력을 모아서 어떤 이에게 몰아줄 수는 있지만 다시 그 집중된 권력을 회수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성립된 권력이다. 그러하기에 민주주의에서 영원한 권력도 없고 권력의 수단인 이익 제공, 억압, 이데올로기 작용 등도 권력자가 마음대로 할 수 없게 제도적으로 제한된다.

현대사회에 나타난 모든 독재자는 국민이 모두 공평한 권력을 쥔 인간이라는 당연한 전제를 부정한 데서 비롯하였다. 최근 검찰에 소환된 두 전직 대통령들도 마찬가지 경우이다.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권력이 모든 이들이 몰아준 권력임을, 따라서 회수될 수 있는 권력임을 생각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제 새 헌법을 만든다고 한다. 새 헌법은 민주주의의 권력이 오로지 '국민에게서 나온 것'임을, 그리하여 국민이 언제든 회수할 수 있음을 가장 깊이 전제한 헌법이어야 한다. 그것이 1년여 전에 촛불을 들었던 국민의 마음일 것이다.


장수익 한남대 문과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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