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축적의 심리

이준원 배재대 바이오·의생명공학과 교수

윤희진 기자

윤희진 기자

  • 승인 2018-03-19 08:04
  • 수정 2019-04-29 09:05
이준원교수
이준원 교수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아름다운 여성을 묘사한 <비너스의 탄생>이 전시돼 있다. 비너스 여신의 우아함은 그 시대의 이상적인 여성미를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21세기 기준으로 보면 날씬한 몸매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구자들은 그림에 존재하는 비너스의 신체 질량지수를 25로 추정했다. 신체 질량지수가 25∼30이면 과체중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정상과 비만의 초입의 경계에 존재하는 수치다.

전통적인 수렵문화 시대를 지나 식량을 한 곳에서 경작하고 동물을 가축으로 키우며 정착 생활을 하면서 사람은 체격도 커지고 훨씬 뚱뚱해졌다.



그리스 시대의 폭군 디오니시우스왕은 수면 무호흡증을 앓았고 회의 중에 잠이 들어 신하들이 바늘로 지방이 많은 부위를 찔러도 깨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집트 파라오들의 미이라 유해를 연구해보면 복부에 지방이 과도하게 있었다.

먹을 음식이 풍부하지 않은 환경에서 진화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욕구와 지방을 축적하기 쉬운 능력을 키워왔다. 뇌에서는 배고픔을 느끼도록 조절하는 단백질을 분비하며 혈액 중에는 일정량의 당을 유지하도록 조절하는 항상성 시스템을 발달시켜 왔다.

우리는 비만과 다이어트를 동시에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비만은 가장 흔하고 평생 돈이 들어가는 장애가 되고 있다. 비만을 질병으로 간주하도록 유도하는 의료계가 있고 비만을 치료하기 위해 혜택받는 기업들이 있다.

부모의 학력과 자식의 비만이 갖는 관계, 그리고 비만과 부의 상관관계에 대한 과학적 그림과 도표를 활용한 그럴듯한 기사들을 언론에서 접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수입이 적은 가난한 사람은 패스트푸드를 자주 먹거나 게을러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무시하고 공격하는 방식으로 차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비만의 심리학적 측면에서 이뤄진 연구에는 포도당항상성 이론이 있다. 비만인 사람은 혈당을 조절하는 과정이 망가져 혈당 수준이 낮다고 잘못 느껴 계속 과식한다는 이론이다. 비만인 사람은 배고픔이나 배부름의 심리적 감각을 인식할 수 없고 심리적 결함을 메우려고 먹는다고도 한다.

우리는 동계올림픽을 훌륭하게 치러냈고 평화를 위한 남북대화가 시작되고 있으며 과거에 일어난 잘못들을 바꾸려는 과정에 있다. 특히 청년에게 커다란 실망을 준 많은 공기업에서 일어난 취업청탁을 바로 잡으려는 과정에 있다.

현재는 과거 60년대 식량이 부족해 시작된 경제성장의 그늘에서 생긴 과도한 부의 축적이 존경받는 시대가 아니다. 가난한 시대에 부의 축적이야말로 진리이며 권력이라고 생각했던 족적들이 아직도 우리 뇌에 각인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봐야 한다.

심리학자 그륀베르거는 사기성 인물로 발전하는 출발점은 이미 아동기 초기에 형성되는데, 엄청난 '자아 취약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자아가 취약한 대신 그것을 쉽게 극복할 수 있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환상의 나'를 가진다는 것이다. 나중에 정체가 탄로 나는 일은 먼 미래에나 일어날 수 있는 불가능으로 생각한다. 심리적 결함을 메우기 위해 과식을 하게 되는 것과 자아 취약성을 메우고 '환상의 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부를 축적하는 것에서 공통점을 볼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의 자기기만 능력은 유전자의 우성 형질로 발현돼 있으며 생존하기 위해 그에 필요한 유전자가 발달해왔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결국 ‘거짓말이 없으면 호모 사피엔스도 없고 자신을 속이는 능력은 남을 기만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슬픈 현실에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오히려 '유전자 편집기술'로 자기기만과 사기 성향을 나타내는 유전자를 편집해 더 이상 인류에 그런 형질이 나타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이 기술을 발전시켜야 하는 필요성을 생각하게 한다.

인류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돼있고 다양한 체중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며 차별받지 않고 공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시대에 진정으로 구별돼야 하고 차별받아야 하는 대상은 법과 질서를 어지럽히고 국민이 낸 세금을 빼앗아 무한한 식탐으로 부를 축적하고도 아무런 죄의식을 못 느끼는 집단과 개인들이다. 이러한 심리적·의학적 불손함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사회적 테두리를 견고하게 만들어야 한다. 

 

/양성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 기사 모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