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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운동으로 재조명받는 단역자매 자살사건 '숫자 18의 의미?'

8월 28일 저녁 8시 18분에 아파트 18층에서 자살한 여자는 대체 왜 ?

이정은 기자

이정은 기자

  • 승인 2018-03-2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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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탐사보도 30회 어느 자매의 자살 2012.09.23 (일)에 보도 캡쳐
2009년 8월 28일 저녁 8시 18분 한 여성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18층짜리 건물에서 떨어져 숨졌다. 지갑에는 8천원이 들어있었다. "18"이란 의미는 세상을 향한 분노였을까. 대체 왜 이 여성은 "18"을 꼭 집어서 그날 자살을 했던 것일까.

5년 전 20대였던 양씨는 동생의 권유로 드라마 보조출연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가수의 백댄서를 하던 동생이 대학원생인 언니에게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제안했고, 2004년 7월 드라마 촬영이 이뤄진 경남 하동으로 갔다. 정작 동생은 덥고 힘들다는 이유로 먼저 서울로 와버려 현장에는 언니만 남아있었다.

이후 서울에 돌아온 양씨는 이상해졌다. 소리를 지르고, "OOO(당시 가해자 실명)을 죽여야 돼." 중얼거리더니, 결국 두 달 여 만에 정신과를 찾았다. 그리고 점점 미쳐가는 양씨. 양씨는 같은 해 11월 정신과 병원에 입원해서야 "기획사 반장들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어머니에게 털어놨다. 성병인 '클라미디아 감염증' 양성 진단도 받았다.



양씨는 드라마 촬영지에서 드라마 보조반장으로부터 성추행 및 성폭행을 당했고, 그 가해자는 무용담처럼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떠벌렸다. 그렇게 보조반장의 성폭력에 가담해, 양씨에게 성폭력을 가한 사람은 보조반장을 포함해 모두 12명이었다. 가해자들은 "어디 말하기만 해봐라. 다 소문 나게 해주겠다" "동생을 팔아넘긴다. 불 지른다. 엄마를 죽인다"고 협박하며 성폭력을 지속했다. 어머니 장씨는 "소희는 한평생 공부만 한 애라 세상 물정을 잘 몰랐다. 사람에 대한 겁도 많았다"며, "가해자들이 전부 다 집을 알아 집 앞에 찾아오면 딸은 어쩔 수 없이 나갔다. 한번 나가면 3~4일 안 들어오고 핸드폰을 뺏어 연락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어머니 장씨는 딸을 대신해 2004년 12월 성폭행과 강제추행 혐의로 관계자 12명을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고소했다. 양씨는 기획사 반장 등 4명이 돌아가며 성폭행했다고 진술했다. 나머지 8명은 강제추행 혐의였다.

그러나 경찰서에서는 도리어 피해자와 가해자를 조사할 때 칸막이 없이 같은 자리에 앉혀 놓았다. 그래서 대답을 하는 피해자 양씨를 향해 가해자들은 비웃고 조롱했다. 또 경찰은 양씨에게 "성행위를 자세히 묘사해라. 가해자 성기의 색깔, 둘레, 사이즈까지 정확하게 그려오라"며 A4용지와 자를 주며 피해자에게 고통을 가했다. 결국 양씨는 경찰의 조사에 고통을 받다가 2006년 7월 25일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소를 취하했다.

그리고 3년 뒤, 양씨는 세상을 향한 욕과 분노가 가득 차 있는 유서를 남기고, 2009년 8월 28일 오후 8시 18분, 18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마치 18이라는 숫자를 통해 세상을 악을 쓰며 욕을 하듯이 18이라는 숫자가 들어 있는 그날 그 시간, 그 장소를 정해 목숨을 끊었다. 유서로 남긴 메모에는 '난 그들의 노리개였던 것이다. 더 이상 살아 뭐하겠나'라고 쓰여 있었다. 세상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의 극단적인 표현이었다.

일주일 뒤, 단역 아르바이트를 소개해줬던 여동생마저 죄책감에 못 이겨 9월3일 경기도 안양시 한 건물의 화단에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됐다. 동생도 유서를 남겼다. "언니가 보고 싶다. 언니의 억울함을 풀어달라" 양씨 아버지도 3개월 뒤, 뇌출혈로 그해 11월 3일 숨지면서 네 식구 중 어머니만 남겨졌다.

혼자 남은 어머니는 "내가 고소를 했기 때문에 죄인은 나다. 고소를 안 했으면 내 딸들이 죽지 않았다"고 자책하며, 자살시도를 했으나 실패했다. 홀로 남아서 그 가해자들을 대상으로 피켓시위를 벌이고 고소를 시도했다. 그러나 고소를 취하했기 때문에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재고소는 불가능했으며, 도리어 명예훼손을 받게 되는 처지에 이르렀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눈물이 마르지 않아서 너무 많이 울다가 장씨는 이제 실명 위기까지 처했다.

미투운동의 바람을 타고 잊혀 졌던 단역 자매 자살사건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라디오에 소개됐고, 어머니 장씨도 19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인터뷰 했다. 현재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21만명의 지지를 받는 청원글로 양씨 가족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내용이 올라와 있는 상태다.

시간이 많이 흘러 미투 운동의 영향으로 잊혀 졌던 단역 배우 자매사건이 다시 주목받게 됐다. 그러나 지금 현재까지도 어머니는 고통 속에서 살고 있고, 반면 가해자 중 2명은 여전히 같은 업계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 단역 자매 자살사건을 재수사해달라는 국민청원 글은 현재 21만명의 지지를 받고 있어, 곧 청와대에선 답을 내야 한다. 아직도 고통 속에 있는 어머니의 한은 미투운동의 영향으로 이제는 풀어질지, 청와대는 어떤 답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이정은 기자 widdms8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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