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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총리, 회초리부터 생일기도까지 ‘어머니의 추억’

이 총리 칠남매가 어머니 삶 그린 책 읽어보니
가족 밑반찬 위해 50㎞ 걸어다닌 사모곡 담아
아버지부터 아들까지 야당 정치인삶 지킨 사연까지

임병안 기자

임병안 기자

  • 승인 2018-03-28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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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총리의 형제자매가 지은 ‘어머니의 추억’
이낙연 국무총리가 어머니 고(故) 진소임 여사를 기록한 ‘어머니의 추억’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2006년 어머니 팔순모임 때 이 총리의 일곱 남매가 자식을 반듯하게 길러주신 어머니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발간한 책이다.

자식이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기억해 하나씩 이야기를 펼쳐놓은 것으로 ‘큰딸 연순이의 추억’을 첫 장으로 해서 큰아들 낙연, 둘째딸 금순, 둘째아들 하연, 셋째아들 계연, 셋째딸 인순, 막내아들 상진씨까지 전남 영광에서의 삶을 잔잔히 풀어놓았다.



이 총리는 ‘어머니의 추억’에서 “가을농사를 마치고 어머니는 게를 잡으러 다니셨는데 고향에서 영광군의 6∼7㎞ 백수해변이나 그곳에 게가 없어지면 전북 고창군 심원 해변까지 다니셨는데 왕복 50㎞가 훨씬 넘는 거리를 걸어다니셨다”고 회상했다.

이 총리 위로 형이 두 분이 있었는데 모두 어려서 세상을 떠났고 그런 때 태어난 낙연을 어머니는 정성스럽게 돌봤다고 한다. 이 총리는 “제 생일이면 어머니는 작은 시루에 떡을 하셨는데 그 떡시루를 안방 윗목에 모시고 떡 위에 작은 종지를 올려 참기름에 실을 달아 불을 켜고 무엇인가 비시는” 어머니의 모습도 아련히 기억했다.

그중 어린시절 메주와 생영감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이야기도 들려주는데 “어렸을 때 얼굴이 길면서 통통하니까 누가 봐도 메주로 보여 별명이 메주였고 어려서부터 목소리가 굵어서 붙여진 별명”이라는 것.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에게 회초리 훈계를 받은 사연도 고백했다.

자신의 집 보리항아리에서 보리를 한 되쯤 훔쳐 2㎞쯤 떨어진 복숭아밭에서 복숭아를 사먹고 집에 돌아왔는데 밭일 나가셨던 어머니가 집에 일찍 돌아와 낙연을 기다리고 있었고 아들을 보자마자 준비해둔 회초리로 “왜 도둑질을 하느냐”하시며 종아리를 때리셨다는 것.

맏아들의 속 깊은 어머니 사랑을 고백한 글도 있다.

“어렵고 외로운, 누구와도 상의하기 어려운 고민이 생기는 일이 많을 때 어머니를 자주 찾아뵈었는데 어머니가 이것저것 가르쳐주시는 것도 아니지만, 어머니를 뵙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더라”며 ‘마마보이’인지도 모른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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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리는 어머니의 추억을 통해 선대부터 야당의 길을 오래 걸어온 가족사도 한 컷 들려준다.

일흔을 조금 넘기고 작고한 그의 아버지는 평생 야당의 지방 당원으로 외길을 걸어오신 분이다.

아버지가 도우시던 정치인이 전두환 정권 출범과 함께 야당을 떠나 여당인 민정당에 합류하셨고 그러면서 아버지께도 민정당에 함께 가자고 권유가 있었다고. 아버지도 이때만큼은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으나 어머니는 이렇게 당부하셨다고 한다.

“내가 당신을 만나 소박맞은 것도 참고, 시앗 본 것도 참았지만, 자식들을 지조 없는 사람의 자식으로 만드는 것은 아무래도 못 참겄소.” 그렇게 아버지의 여당행을 막았다는 것.

이 같은 운명은 이 총리에게도 이어져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당을 버리고 신당(열린우리당)에 동참했을 때 노 전 대통령이 두세 번쯤 사람을 보내 당시 이 대변인의 신당 동참을 권유한 것. 장관직 얘기도 있었다고. 그런 와중에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나다. 신당 가지 마라 잉!” 어머니는 그 말씀만 하시고 전화를 끊으셨다고 한다.

이 총리는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을 일일이 맞이했으며 전남 영광 선영에 어머니를 모셨다.
세종=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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