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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당연한 판결

고춘순 법무법인 베스트로 변호사

입력 2018-04-02 08:27   수정 2018-04-02 08:27

고춘순변호사
고춘순 변호사
변호사로 활동한 지 어언 3년을 채웠다.

그간 다양한 사건들의 소송대리, 변론 등을 맡아 많은 일을 겪었고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판결을 선고받는 날이면 사건의 당사자보다도 더 긴장될 때가 많다.

아는 것이 병인 것처럼, 기대하는 판결이 선고될 수 있기 위한 필요조건들을 당사자보다 훨씬 더 많이 알기 때문이다. 그러한 필요조건들은 변호사의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 많고, 충분조건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내가 기대하는 판결이 '옳은 판결'일 때는 더욱 숨을 죽인다. 의뢰인은 나보다 담담해 보이지만, 그만큼 기대 이상의 판결이 선고되면 낭패가 클 것이다.

솔직하게 만 3년을 돌아보면, 나는 대부분 진실과 정당한 권리 쪽에 서 있었다. 거짓된 변론이나 부당한 권리를 위한 서면은 써지지 않기에 그래야 하는 사건은 애초에 수임하지도 않는다. 물론 내 생각에 불과하고, 변호사로서는 장애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법정에서도 진실과 정의가 항상 승리하지는 못한다는 것'이 공지의 사실인 것처럼, 나도 기대와 달리 늘 '옳은 판결'을 선고받지는 못했다.

법원 밖에서는 당사자 사이에 증거가 필요 없이 진위(眞僞)가 명백한 사실일지라도 법대(法臺) 앞에 이르면 거짓이 고개를 들고 때로는 득세하기도 한다.

판사들은 사실관계를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선입견을 배제한 채 거짓말을 경청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재판제도 자체가 판사에게 거짓을 간파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위험천만한 것이 아닐 수 없고, 판사가 상대방의 거짓말에 속을까 애태우는 당사자들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변호사 생활은 '변함없는 것이 진실의 본질이고 성장하는 것은 거짓의 속성'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경험하게 해줬다.

처음에는 다소 어설펐던 거짓말이 수사나 재판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빈틈없는 모양으로 성장하고, 진실을 가리는 거짓말과 그럴듯한 증거들이 쌓여만 간다. 판사가 인고(忍苦)의 시간으로 산더미 같은 주장들과 증거자료를 면밀히 살피고 통찰하지 못한다면 거짓의 허를 간파하기 어렵다.

당사자들 사이에 진위를 다투는 분쟁의 중심에서 사실관계와 권리관계를 일목요연한 문장으로 선언하는 판결에는 이미 존재하는 실체를 재확인하는 것을 넘어 없던 실체도 잉태시키는 힘이 있다. 자칫 진위를 그르친 판결은 진실을 사장(死藏)시키고 거짓에 생명을 부여하기도 한다. '적극적인 거짓'에게 있어 판결은 밑져야 본전이고 잘하면 득세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으니, 법정 안에서 거짓이 무성한 이유다.

판사도 전지전능할 수는 없고 많은 시간을 들여 사건을 파악하고 올바르게 형성된 논리와 경험칙 바탕으로 '옳다고 믿는 판단'을 할 뿐이다. 그래도 도저히 알 수 없는 경우에는 입증 책임이 있는 쪽의 불이익이나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것이 법에 정해진 판단 기준이지만, 때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증거를 만들어 둘 이유도 없었던 당사자나 진실을 호소하는 피해자에게는 울분의 철퇴가 될 수도 있다.

입증 책임은, 올바른 논리와 경험칙을 가진 판사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최선을 다한 각고의 노력에도, 진위를 알 수 없을 때만 찾아보는 기준이 돼야 하고, 선입견으로 무시되거나 고뇌를 피하는 요령이 돼선 안 된다.

어느 민사판결의 선고가 있는 날이다. 난해한 사실관계만큼이나 기록이 두껍고 증인신문을 비롯해 심리과정도 길고 복잡했었기에 어느 사건보다 담당 판사의 특별한 노력이 요구되고 올바른 논리와 경험칙이 중시되는 사건이라 크게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도 기대하는 '옳은 판결'이 선고됐다.

돌아보면, 마땅히 선고돼야 했을 당연한 판결이라고 할 수 있지만,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당연한 판결을 선고받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숨죽이는 일인지 잘 모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되짚어지곤 하는 법의 날이 다가왔다. 신뢰받은 법원의 근간은 무엇보다 당연한 판결을 선고하는 당연한 법원의 역할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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