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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다문화 릴레이 기고] 나도 '서지현'이다

배영옥 대전시 성평등기획특별보좌관

박태구 기자

박태구 기자

  • 승인 2018-04-04 08:03

신문게재 2018-04-05 11면

배영옥 성평등특보
한 검사의 용기가 37년 전 그날을 정확하게 끄집어냈다.

가해자는 이미 잊은 평범한 일상일지 몰라도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여학생은 오십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날을 또렷이 기억해 냈다. 당시 그 여학생은 가해자를 처벌할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저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지우려 애쓴 것이 전부였다. 그것만이 그녀가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동안 이렇게 차마 말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왔던 무수한 '서지현'들의 이야기가 미투(#Me Too: 나도 피해자다)의 물결로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문화예술계에서 폭로가 잇따랐고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가 무너지는 등 거침없이 사회 각 분야로 향하고 있다.



성폭력은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치유되거나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 성범죄는 여성과 약자에게 가해지는 젠더 폭력인 동시에 권력형 범죄이다. 미투가 한바탕 소동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운동으로 가기 위해서는 폭로된 수많은 사건들에 대한 철저한 검증으로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해야 하며 가해자는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더불어 피해자 중심의 접근과 더불어 상처에서 회복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들이 취해져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전반의 개개인의 그릇된 의식과 제도를 바꾸고 더 나아가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일이다.

날로 확대되는 미투로 인해 우리 주변의 평범한 남성들 역시 충격과 불편함을 같이 느끼는 듯하다. 잠재적 가해자로 여겨지는 시선들과 오랜 악습의 공범으로 몰리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미투는 누군가를 더 불편하게 하는 운동이 아니다.

지금의 미투운동은 건강한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사회적 변혁을 향한 물결이다. 우리 가족이 건강한 사회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내 딸, 아내, 아들이 직장에서 학교에서 군대에서 차별받지 않고 인격적으로 대우받기를 원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잘 보호하고 배려하는 사회, 사회적 약자들이 살기에 충분히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회가 바로 좋은 사회일 것이다. 미투는 바로 그런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는 운동이다. 성평등한 사회구조와 문화가 만들어질 때 비로소 건강한 변혁이 완성되는 것이다.

미투 운동 이후 일각에서는 '펜스 룰'을 운운하는 시각도 있지만 이 또한 2차 가해이다. 단순한 회피는 문제를 숨긴 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곪게 하는 처방에 불과하다. 더 건강한 사회를 꿈꾸는 의지들을 모아 성평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의식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 보기를 바래본다. 이 참에 남녀 사이의 위계적인 문화를 바꾸고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변화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기를 희망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고민하는 무수한 '서지현'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나도 너였다. 그리고 성평등을 지향하는 이들의 손을 잡고 말하자. 이젠 #with you라고.

배영옥 대전시 성평등기획특별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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