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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기억과 세월호

장수익 한남대 문과대학장

입력 2018-04-19 08:33   수정 2018-04-19 09:07
신문게재 2018-04-20 8면

장수익
장수익 한남대 문과대학장
'기억'이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것은 20세기 초였다. 19세기 말까지 소설의 주종을 이룬 것은 당대 현실이나 풍속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사실주의(寫實主義)였기에 기억 자체를 문제 삼으려는 시도는 그때까지 없었다. 그런 점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현대 소설의 중요한 화두를 제시한 선구적 작품이 된다.

베르그송에 의거해 파악한다면, 프루스트가 다룬 기억은 비수의적 기억이다. 베르그송은 기억을 수의적 기억과 비수의적 기억으로 나눈 바 있는데, 수의적 기억은 떠올리려는 의지에 따라 언제든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며, 반면에 비수의적 기억은 현재의 의지와 관계없이 볼쑥불쑥 떠오르는 기억이다. 프루스트는 우연한 계기로 떠오른 기억을 글쓰기를 통해 이어가서 과거의 진실을 생생하게 되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가운데 무엇이 진정한 기억일까. 베르그송은 비수의적 기억을 진정한 기억으로 본다. 현재 '나'의 평안을 위해 잘 다듬어진(왜곡된) 수의적 기억과 달리, 부수의적 기억은 다듬어지지 않은 원래 그대로의 기억이라는 것이다.

이후 프로이트는 이 부수의적 기억을 되찾아 신경증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이른바 자유연상을 제시한 바 있다. 환자는 원인 모를 통증이나 불면증에 시달리는데, 그 원인은 망각된 과거의 상처에 있다. 그럴 때 프로이트는 환자가 왜곡된 수의적 기억을 떠올리지 않게 하기 위해 편안한 방심 상태에서 자유롭게 연상하도록 하여 망각된 기억을 되찾게 했던 것이다. 과거의 진실을 억누르거나 외면하지 않고 바로 대면해야 문제가 풀린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과거의 진실을 바로 본다는 것이 문제 해결에 핵심이 된다는 것은 개인 차원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집단이나 사회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좀 다른 것은 집단이나 사회의 상처에 대해 권력이 개입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과거의 진실이 드러나면 권력에 위협이 되는 경우, 권력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오도된 기억을 수의적으로 심어주려 하는 것이다. 6·25 당시 보도연맹 학살을 공산주의자 처단으로 바꾸었던 것이나, 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의 사주에 의한 것으로 몰았던 것이 그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개인들이 과거의 잊힌 상처로 현재 신경증에 시달리게 되는 것처럼 사회도 강제로 오도된 기억으로 인해 집단적인 신경증을 앓게 만들고 결국은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큰 원인이 된다. 여기서 상처를 직면했던 이들은 비수의적 기억과 같은 역할을 한다. 권력이 억눌려도 불쑥불쑥 나오는 그들의 증언은 사회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된다.

세월호가 아까운 많은 목숨과 함께 가라앉은 지 4년이 되었다. 아직 여러 면에서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일각에서는 이제 그만 세월호를 잊자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이 같은 소리는 잊어야 평안해지는 권력의 입장에 선소리다. 망각으로 해결되는 문제도 없고 왜곡된 기억으로 나아지는 사회도 없다. 망각과 왜곡된 기억은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낳을 뿐이다. 세월호의 진실을 대면할 때에야 비로소 세월호가 가져온 사회적 고통도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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