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밴드
  • 트위터
  • 페이스북
  • 검색
  • 전체메뉴

실시간뉴스

닫기

[조영연의 산성이야기] 백제부터 6.25까지 역사의 상처 견뎌내

제47회 위례성(慰禮城-천안시 북면 운용리)과 용샘

입력 2018-05-25 00:00   수정 2018-05-25 00:00

위례산성전경650
위례산성 전경/사진=조영연
입장으로 병천 방면에서 들어갈 때 57번 지방도를 이용해서 운용리 부수문이고개(부수령)에서 남쪽 등산로로 진입하는 것이 가장 좋다.

성은 위례산(523m) 정상에 있다. 토축과 석축이 함께 있는 둘레 약 800m의 테뫼식 산성이다. 대체적으로 기초를 고른 후 약간의 석축 기단 위에 석축이나 토축으로 쌓았다. 토축부는 안쪽의 호로 미뤄 성토와 외부 삭토로 처리한 듯하지만 석재들이 혼재한 면도 보인다. 석축 부분은 기초를 닦고 그 위에 큰돌로 시작하여 올라갈수록 작은 돌로 허튼층쌓기를 했다. 나머지는 흙에 묻히고 남은 일부의 협축한 듯이 보이는 부분 내벽은 높이와 폭 다 같이 1m 가량이다. 남북봉 사이 삼사백 미터 길이의 능선을 따라 축조된 성벽의 외측은 의외로 경사가 심한 편이다. 능선을 중심으로 좌우 폭은 넓은 곳은 사오십, 좁은 곳은 이삼십 미터 정도 된다. 능선 끝 남봉에는 직경 사오십 미터의 둥그스럼한 원형의 평탄지, 북봉에는 원형 고대지가 있으며 그 사이는 마치 마안(馬鞍)의 형태로 성의 내부를 이룬다. 전체적인 성의 평면도는 약간 구부린 굼벵이 형태를 취하고 있다. 문지 주변은 협축으로 두껍게 밖의 능선보다 10여 미터 높이 조성 있으며 약간 우회하여 들어가도록 조성돼 진입시 직접 들어오지 못하도록 처리했다. 서벽 석축부는 자연석 막돌로 허튼층쌓기를 한 삼사십 미터 가량 된다.

성내의 시설은 남북봉 장대지(고대)들, 안부와 남봉 안쪽 평지의 건물 및 시설지들, 양쪽의 남북문지를 추정해 볼 수 있다. 또한 성의 안부 중간 능선 서편 급경사 아래와 서벽 사이에 현존하는 우물(용샘) 주변의 상당한 평탄지도 성과 관련된 생활공간이나 건물들이 들어섰을 지형으로 보인다. 용샘은 직경 이삼 미터의 원형인데 그 주변은 두세 단의 석축으로 가지런히 테두리를 했으며 현재도 아주 맑은 물이 담겨 있다. 이 우물에서 지하나 숲으로 매몰된 수구가 용샘 아래 서벽에 났었을 가능성이 있다. 수로와 병행해서 문지가 조성됐다면 아랫마을과 통하는 서문지가 여기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민들은 옛날에 용이 그 속에 있어 서해로 통했다는 이야기다. 내부에는 경질토기와 와편들이 산재한다

서울대학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위례산 정상부에 둘레 950m를 잡석으로 허튼층쌓기로 남북 길게 장타원을 이루도록 능선을 테뫼하여 축조한 것으로 보고됐다. 시설로는 추정 동, 서문지 2곳, 성내에서 우물터(2.2×3m) 로 이삼단 잡석 테두리를 한 곳이 발견됐으며 백제 승석문 토기편, 삼족토기편 등 300여 점과 선조문 와편 등 기와류, 토제말, 철제낫, 開元通寶, 管玉 1점 등이 출토됐다 한다. 대체적으로 백제~통일신라기 성으로 추정했다.

위례산성벽잔재3650
위례산성 성벽 잔재/사진=조영연
東國輿地勝覽에 성내에 우물이 하나 있고 금폐됐다는 기록이 있다.

이 지역은 대체적으로 백제시 大木岳郡, 木州, 고구려 점령시 蛇山縣 관할이었다가 백제의 웅진 천도 이후 위축된 상태에서는 고구려-신라의 지배하에 들어 삼국간 각축전에서 오락가락하면서 국경 지대로서 큰 역할을 했던 곳이다. 성에서는 서쪽 방면의 시계가 아주 양호하여 서편 사산성과 입장, 직산, 성거를 통과하는 남북 교통로(현재 서울-부산간 모든 교통로가 지남)가 뚜렷이 관측되며 동편으로는 진천과 내륙으로 진행되는 교통로가 지난다. 특히 신라 점령시에는 삼년산성-남양만(당항성)의 교통로상 요충지로서 중국이나 서해로부터 내륙으로 진입하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입장까지 배가 들어왔다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성의 동벽 아래 군단이마을은 백제시대 군사들이 주둔한 곳이었다고 전해오고 6.25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곳이기도 하다. 서쪽에 사산성(蛇山城 혹은 文城 - 직산의 진산), 남쪽 성거산성, 동쪽 서운산성과 동남쪽 진천의 만노산성 등이 있다.

위례의 지명은 '우리(籬)'와 관련이 있고, 위례산을 부소산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위례성 일대는 자칭 천안알프스라 일컫는 만큼 산수가 수려하다. 순한 산자락 틈으로 깊은 골짜기 맑은 물이 도로가에 흘러 답사하기에 지루하지 않다. 이름도 구수한 부수문이고개에서 오르는 길이 평탄하고 잘 다듬어져 힘이 들지 않는다. 특히 길 양쪽 미녀들의 다리처럼 날씬한 철쭉들의 자태를 보면서 황토길을 걷는 상쾌한 기분에 젖어 산성 위에 올라 바라보는 직산 일대의 막힘없는 경치가 시원하다. 맑은 날이면 멀리 서해바다까지 보인단다. 봄철 철쭉꽃 터널이면 최상의 기분일 것 같다.

위례산성용샘650
위례산성 용샘/사진=조영연
천오백년 세월 속에서도 자태를 잃지 않은 용샘이 일품이다. 위압적인 크기도 아니요 비굴한 위축도 아니요 화려함을 뽐내려는 자태도 아니다. 낮은 둘레석축으로 직경 삼미터 가량 원형으로 둘러싸인 속에 아무런 치장도 하지 않은 모습이 수줍은 시골 처녀 얼굴이라고나 할까. 가지런한 풀밭 가운데 용샘의 맑은 눈동자를 들여다보노라면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수면에 가을의 파란 하늘과 흰구름이 담겼다.

조영연 / '시간따라 길따라 다시 밟는 산성과 백제 뒷이야기' 저자

조영연-산성필자250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이 기사에 댓글달기

인기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