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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우리의 대부분은 아직도 머슴으로 살고 있다

이준원 배재대 바이오·의생명공학과 교수

입력 2018-05-27 10:00   수정 2018-05-28 07:46

이준원교수
이준원 교수
'머슴이 뭘 알겠어?'

1997년 말 외환위기 와중에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했던 말이 있다. 전문경영인을 머슴으로 표현하고 취급한 회장의 그룹은 결국 부도를 맞았다.

조선시대에는 지주의 집에 거주하며 새경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머슴이 있었다. 대부분 지위가 세습적이며 경제적인 수탈로 이어졌고 스트레스와 희망이 없었던 탓에 노름과 술에 쉽게 빠져들었다.

1894년(고종 31)의 갑오경장 후에 많은 노비가 머슴으로 바뀌었고 1930년까지도 53만여명의 머슴이 고용돼 있었다고 한다. 1940년대 일제 강점기에는 징병으로 노동력이 부족했지만, 공장이 건설되고 1960년대 이후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며 지주에 예속돼 농업을 담당하던 머슴은 고스란히 상업적인 목적의 형태로 지금까지 우리의 삶과 사회에 남았다고 봐야 한다.

대기업 오너가들의 갑질이 문제가 되고 있다. 블랙리스트 작성이나 탄압작전에 대항하는 직원연대나 노조 설립은 당연한 결과라고 봐야 한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2013년 외국계 제약영업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사회심리적 스트레스 조사에서, 응답자의 50.4%가 고위험 스트레스군, 48.7%가 잠재적 스트레스군에 속했다. 우울 척도 측정에서는 73.3%가 위험군에 포함됐다.

미국 듀크대 제이 텅 교수팀은 원숭이 암컷 46마리를 서열관계를 만들고 면역력에 관련된 ‘자연살해 세포’의 유전자와 활성화를 측정했더니, 서열이 낮은 원숭이의 세포에서 염증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과도하게 발현돼 있었다.

이 연구결과는 빈곤층과 노동자에게 염증성 질환이 잘 걸리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호주 북쪽의 솔로몬제도에 속한 섬에 사는 다양한 씨족들의 지도자는 성과를 기반으로 그 자리에 올랐다. 세습귀족이 없었으나 씨족분파 중 강력한 씨족이 되기 위한 과정은 다른 사람과 구별되길 원하는 인간의 심리와 대우받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으로 불평등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는 씨족 간 지위 격차로 이어졌다.

모든 인간집단은 채집생활에서 정착생활을 하며 문명으로 나아갔고 성과를 내려는 인간의 욕망은 필연적으로 특권층을 만들었다고 한다. 성과 기반 사회는 야심적이고 탁월한 역량을 지닌 개인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있다.

이러한 생물학적 표현형을 지닌 개인은 자신이 구축한 사회적 지위를 비슷한 DNA 가진 자식에게 물려줌으로써 자신의 역량을 영원히 남기길 원한다. 그러나 스스로 노력해 성과를 얻어낼 수 있는 특권이 아닌 버릇없이 자랄 수 있는 특권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게 되면 직원들을 노비나 머슴으로 취급한다.

경영자들은 노조와 임금 때문에 사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경제학에서는 타인과의 안정적 관계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다수의 믿음'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오너와 경영자들은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실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신뢰의 대상이어야 한다. 사업이 어렵다면 노동자와 임금을 탓할 게 아니라 마음을 얻고 있는 리더인지 스스로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소유한 자의 덕과 사회에 대한 기여, 그리고 소중한 땀에 대한 가치, 노력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 풍토가 아직도 부족하다. 긴 역사를 가진 불평등을 완화하고 조절할 수 있는 장치가 잘 마련된 사회일수록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나라가 될 것이다.

미래사회에는 직업을 가지고 생산 활동을 하는 인구가 줄어든다고 한다. 새로운 문명과 네트워크가 확장되고 수평적 인간관계가 더욱 강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노동생산성 때문에 임금을 삭감하고 기계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불평등을 유지하기보다는 다수의 믿음으로부터 출발하는 리더와 노동자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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