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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 선거 후 속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려면

김호택(연세소아과 원장)

고미선 기자

고미선 기자

  • 승인 2018-05-29 13:57

신문게재 2018-05-30 21면

김호택(연세소아과 원장)
김호택(연세소아과 원장)


다른 고장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금산은 이번 지방선거에 대단히 관심이 많다. 지역 현안으로 온 군민이 분노하는 사안이 있기 때문이다. 현직 군수 12년 재임 중에 지역 경제는 피폐할 대로 피폐해졌고, 경치 좋은 산이란 산은 다 파헤쳐 졌다. 이런 재앙은 그래도 다음에 좋은 군수가 나온다면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나는 기대한다. 문제는 우리 지역에, 그것도 산꼭대기에 돈을 벌겠다고 전국의 의료폐기물을 다 가져와서 폐기물처리장을 만들기 위해 소송 중이고, 많은 지역 주민들은 현직 군수가 이들을 옹호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이런 괴물이 우리 지역에 들어선다면 금산 인삼 브랜드는 그 가치가 엄청나게 훼손될 것이라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인물은 능력 여부에 관계없이 떨어뜨려야 한다는 것이 지역 민심이다.



지난 지방선거에 박 군수가 다시 나섰을 때 나는 분노했다. 선수로 뛸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소위 '야권단일화'에 관여하면서 두 후보의 토론회에서 사회를 보기도 했다. 단일후보가 되면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더니 단일 후보 문정우씨가 나에게 마이크 잡고 유세장에서 스피치를 해달라고 하기에 약속은 약속인지라 서너 번 마이크 잡고 떠들기도 했다.

"세월호 선장이 어째서 죽일 사람인가? 그 사람이 불쌍한 아이들을 물에 빠뜨렸는가? 아니면 배를 침몰시켰는가? 그 사람의 죄는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도망 나왔고,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임무를 저버렸던 것이다. 박동철 씨, 금산이 어려울 때 어디에 있었는가? 인삼농협이 망가질 때 무얼 했는가? 목소리 우라늄 광산 결사반대하느라 군의원들 머리 삭발할 때 무엇 했는가?"

하지만 선거 결과는 대단히 실망스러웠고, 금산은 지난 4년 동안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다시는 선거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우선 내가 나설 명분이 없었고, 새로 출마하는 후보들의 자질이 훌륭해서 누가 당선되어도 좋을 것 같았기에 많은 분들이 도와달라고 요청했지만 절대 마음 변하지 않으려 했다.

금산로타리클럽에서 세 명의 회원이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했다. 군수 후보 한 분, 도의원 후보 한 분, 그리고 군의원 후보 한 분이다. 모두 20년 전후의 봉사활동을 함께 한 가족과 같은 사람들이지만 욕을 먹고, 서운하다는 말을 듣고, 나중에 미안하다는 사과를 할 지언정 선거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박성영씨가 처음 군의원 출마하면서 사무실 개소식에 축사 한 마디 해달라는 요청은 거절하기 힘들었다. 짧은 말 속에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잠시 생각하다가 천안 출장 갔다가 식사 자리에서 천안사람들에게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천안 국회의원 양승조씨 얘기였다. "천안에서는 선거로 양승조 이길 사람 없어." 여기에서는 그런가 보다 했다. "4선 국회의원인데, 아직도 사람이 겸손해." 이 말에 귀가 솔깃했다.

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여러 가지 덕목 중에서 '겸손'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생각이 아니라 많은 선각자들의 말씀을 들으며 그렇게 정리된 것이다. 겸손하다는 것은 초심을 잃지 않았다는 의미이고, 상대방의 생각과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저수지를 갖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박성영씨에게 이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이번 선거에 누구를 지지하는가?' 혹은 '누가 가능성이 높은가?' 하는 질문을 받으며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이제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선거 후에 속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가장 확률 높은 방법은? "언제까지나 겸손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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