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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상석 위의 서울대 합격증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입력 2018-06-15 00:00   수정 2018-06-15 00:00

서울대
집에 고 3 수험생 하나가 있으면 그 엄마는 하녀가 되고 수험생은 상전이 된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아내는 아들 하나 있는 것 비위 맞추고 시중드느라 팔자에 없는 하녀가 되어 고생을 하고 있다. 거기다 덤으로 얻은 아들놈 비서자리 지키기 위해 충성을 다하느라 제대로 밤잠도 못 자고 있다. 아들놈은 공부 좀 한다는 구실로 고3이 되어 위상이 한 단계 높아진 게 분명하다.

예나 지금이나 일선 고등학교에서는 고3 학생들이 늦은 시간까지 야간 자습을 하고 있다. 아들 다니는 대성고등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다른 학교보다 극성을 더 부리는 편이었다. 성적순으로 특별반을 편성하여 밤 1시까지 자율학습을 시켰으니 말이다. 아들놈이 자습 끝나고 집에 오면 밤 2시 가까운 시간이 되었다. 아들 비서인 아내는 하루도 빠짐없이 애가 돌아오는 시간까지 안 자고 기다리고 있다. 무료하니까 독서광이 되어 아들 오는 시간까지 책을 읽고 있다. 아들놈이 제 어미를 독서광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나라고 하는 아비는 고3담임을 한답시고 아내를 도와 줄 뻔도 못 했다. 야간자율학습지도 끝나고 집에 와선 피곤하다는 구실로 쓰러져 자고 있을 때에도 아내는 불평 한 마디 없이 독서하며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내는 모성애 본능이 남다른 여성 같았다. 하루가 아닌 매일을 이런 생활을 하였으니 말이다. 아내를 도와주지 못했던 내 자신은 미안해하는 마음 하나로 면죄부를 받은 셈이었다.

아내는 한 달에 한 번씩 원거리 등산을 다녀오곤 했다. 등산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다리가 얼마나 아프고 피곤할까마는 한 번도 일찍 누워 본 적이 없다. 애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그 시간까지 늘 하던 모습 그대로 흐트러짐이 없었다. 아마도 철인으로 사는 어머니의 표본상인 것 같았다. 세상에 보기 드문 모성애로 똘똘 뭉친 자격증 있는 철인 같았다.

3학년 2학기 어느 날 학부형 총회가 있다고 대성고등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어려운 시간을 내서 아내와 함께 아들 학교에 갔다. 학교 건물 후면 동으로 가서 대강당 회의장을 찾는데 교실 복도 들어서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복도 벽에 무언가 가로로 붙여 놓은 종이를 열심히 쳐다보고들 있었다. 바짝 다가가서 바라보니 2학기 모의고사 성적 문·이과 1등서부터 100등까지를 써서 붙인 방이었다. 아내와 나도 아들 성적과 순위가 궁금하여 찾아보았다. 마침 아들 이름이 맨 앞에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들놈이 문과 전교 1등이었다. 순간 아내 표정을 보니 입이 귀에 걸린 모습으로 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마음도 모습도 아내에 뒤질 수 없다는 듯이 가슴까지 덩달아 뛰고 있었다. 자식이 무슨 요물인지도 모르겠다. 일상적인 작은 일로 부모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부부의 마음은 아들이 전교 1등이라는 그것 하나로 천군만마를 얻은 쾌승장군이 되어 있었다.

옆에 서서 방을 쳐다보는 사람들이 모두 찬사축하를 보내 주는 것 같았다. 몇 미터 전방에 서 있던 아내와 안면이 있는 어머니가 주변 사람들한테 뭐라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들어보니 < 저기 서 있는 분들이 이 번 전교 1등한 남영민 엄마 아빠요. > 라고 수군거리는 소리였다. 순간 아내와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낌으로 왔다. 아내와 나는 무대 위의 유명 스타가 되어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느낌이었다. 그때 그 순간의 기쁘고도 자랑스러웠던 마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입시 상담을 하기 위해 담임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아들놈이 진학하고 싶은 대학은 서울대학교 경제과, 아니면 경영과 목표였다. 나도 고3 담임을 하고 있어 대학교 진학 배치 점수표를 만들어 아들 점수를 대입해 보았다. 서울대 경영 경제과 지원은 가능한 점수였지만 자신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마음속으로 완전 합격이 보장되는 연세대 경상계열로 생각을 굳히고 담임선생님 말씀을 들었다. 담임선생님은 완강하게 서울대 쪽으로 고집을 하셨다. 신중을 기하는 마음으로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연세대로 굳힌다고 말씀드렸더니 난색을 표하고 펄펄 뛰셨다. 대성고등학교 전교 1등짜리가 서울대 피하고 딴 대학 지원하면 담임 못한다는 얘기까지 하셨다. 장시간 담임선생님과 대립각을 세우다 담임선생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지망학과는 한 단계 낮추어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지원하기로 뜻을 굳히고 집에 돌아왔다.

고3 담임 입시지도를 여러 해 해봤지만 아들 고3 때만큼 초조하고 불안한 적은 없었다. 우리 집 애가 수험생이 아니었을 때는 그렇지는 않았었는데 그때는 불안 초초를 가슴에 매달고 사는 사람 같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드디어 전기대학 합격자 발표 날짜가 다가왔다. 아내와 나는 거실에서 식사를 하다가 아내가 ARS 다이얼을 돌렸다. 몇 번을 시도하다 드디어 연결이 되었다.「 남영민 서울대 국어교육과 합격. 축하합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긴장된 아내의 얼굴이 밝아지며 두 눈에선 소리 없이 복병으로 숨어 있던 액체가 흘러내렸다. 식사 중이던 우리 내외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기쁨으로 반죽된 그 액체를 주체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 순간을 위해서 소중하게 간직해 두었던 어떤 보석보다 값진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그 소중한 인고의 세월이 용해되어 흐르는 액체를 아낌없이 방출하고 있었다. 모처럼만에 아내 편이 되어 눈물로 보조를 맞추는 응원의 기쁨도 괜찮은 것이었다.

아내는 고3 아들 비서자리를 잃는 허전함과 하녀생활을 마감하는 마당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그 동안의 고생과 새끼의 합격 기쁨의 감정이 뒤얽혀 주체를 못하는 것 같았다.

서울대 합격증을 받아왔다. 우선 아들을 데리고 담임선생님 댁을 방문했다. 담임선생님 앞에 서울대 합격증을 놓고 큰절을 올리게 했다. 입시 상담 때 서울대 아닌 딴 대학을 가려 한다고 언짢아하셨던 담임선생님 얼굴이 후광을 담은 부처님 얼굴같이 환해졌다. 새어나오는 미소를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모르고 계셨다.

아들놈한테 음수사원(飮水思源)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고향의 선산에 계신 조상님을 찾아뵈러갔다. 조상님 앞에 가자마자 상석 위에 서울대 합격증을 올려놓고 우리 부자는 큰절을 올렸다. 조상님 음덕으로 우리 영민이가 전국 수재 천재들이 모이는 서울대를 지원해서 당당하게 합격했습니다. 조상님 고맙습니다.

음수사원(飮水思源)으로 칭송받는 삶이 서울대 합격보다 더 큰 기쁨이 되게 하소서.

음수사원(飮水思源)하는 삶이 아들의 정신적 재산목록 제 1호가 되게 하소서 .

보석보다 소중한 바로 이런 삶이 제 아들을 평생 훈장감으로 살게 하소서.

※ 음수사원(飮水思源) : 한 모금의 물이라도 마실 때에는 근원을 꼭 생각한다는 뜻으로, 근본을 잊지 않고 사는 삶, 곧 매사에 감사하며 사 는 삶을 가리킴. 즉 배은망덕(背恩忘德)하지 않는 삶을 뜻함.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수필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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