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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연의 산성이야기] 복지겸 등 수많은 인재의 고향.. 연암 박지원과도 인연

제52회 면천읍성(沔川邑城-면천면 성상리) 연암 박지원의 발자취

입력 2018-07-06 00:00   수정 2018-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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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읍성 군자정과 북벽/사진=조영연
면천은 본시 백제 혜군(?郡), 통일신라 혜성군으로, 고려시대 운주(홍성) 소속으로 監務를 두었다. 충렬왕 때는 이곳 출신 卜奎가 哈丹兵(거란병)을 물리친 공으로 知沔川事로 승격됐다가 구한말 당진군 속에 포함됐다. 성상리 2구 불당골 남쪽 당골은 신라말 중국에서 복씨의 선조가 표류돼 와 살았다고 당진지역 지명유래는 전한다. 신라말 당으로부터 귀화한 복학사, 복지겸을 배출한 卜씨 가문과 성종 때 판서를 지낸 능성 具文信 가문, 후손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 편찬에 관여한 좌의정 荇, 李安訥과 澤堂 李植 등 뛰어난 학자들을 배출한 조선초 정승 李宜茂 가문 등을 통한 많은 인재들이 나왔다. '물이 가득 모여 바다로 흘러간다'는 의미 그대로 당진보다 오히려 훨씬 더 힘이 있고 인물로도 번성했던 곳이다. 복지겸과 더불어 고려 건국 공신인 박술희의 고향이기도 하다.

동서 타원형의 면천읍성 성벽은 오늘날 다 없어지고 서벽 일부에서만 복원부와 잔존벽, 치 흔적이 약간 확인될 뿐이다. 서문지는 확실하고 향교와 골정지로 통하는 동문지는 성벽 절단부에 해당된다. 북문지는 안샘 뒤에 자연스레 이뤄진 통로가 된다. 북문 안쪽 안샘은 지금도 맑은 물이 계속 솟아나 군자지에 물을 공급한다. 여지승람 기록으로 보면 둘레는 약 2km 가량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추진 중인 복원계획은 구조나 시설 등 여지승람을 참고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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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읍성 풍락루/사진=조영연
성내에는 큰 돌받침에 장대석을 얹은 君子池의 자연석과 돌다리, 풍년이 들어 백성들과 더불어 평안하고 즐거움을 누리라는 염원에서 조성한 풍락루(豊樂樓), 초등학교 마당의 두 거목들이 자리를 지킨다. 동문 밖에는 연암 박지원이 현감으로 재직시 조성했다는 골정지가 남았다.

가지런히 복원된 서벽 안으로 들어서면 면사무소 앞에 서 있는 외로운 풍락문이 객을 맞는다. 면사무소 문 앞에 세워 면장이나 공무원들에게 백성들이 즐거움을 누리게 만들도록 열심히 일하라는 준엄한 경고문처럼 보이는데 어쩐지 좀 외로워 보이고 초등학교 운동장 쌍둥이 거목들은 수백 년 애환을 가슴에 묻고 묵묵히 성안을 내려다본다. 느티나무에서 한 걸음 옆 군자정의 검은 색 팔각지붕이 하얀 벚꽃 사이로 살짝 내 보인다. 안샘에서 내려온 맑은 못속에 정자의 그림자가 고요하다. 돌다리로 통하던 연못 속 정자 난간에 기대면 벽공 아래 둥그스럼한 몽산 이마가 참 인자하다. 이름이 고운 안샘은 물조차 정답다. 지금도 바닥돌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물속에 보호각 천장 단청이 푹 빠졌다. 부드러운 바람에 이는 붉은 색, 비취색 샘바닥 물결이 참 신비스럽다. 고려 개국 공신 복지겸이 신령의 뜻을 받아 이 물로 두견화를 넣어 빚은 술로 치병을 했다는 영험한 전설까지 보태졌다. 그 이후로 안샘은 두견주로 오늘까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니 풍락이 여기에 와서 제 뜻을 펼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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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읍성 골정지와 몽산/사진=조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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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읍성 골정지의 '건곤일초'/사진=조영연
면천의 진면목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비록 복원되긴 했지만 너른 잔디를 인 가지런한 성벽에 올라설 때이다. 북쪽으로는 푸른 하늘을 이고 선 몽산의 모습이 단정하다. 산이 뭉툭하게 생겨 몽산이라는데 몽실몽실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모난 곳 하나 없는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그 골정지 못 속에 몽산 그림자가 조용히 잠겼다. 현재의 읍성 이전 면천의 배후성으로 추측되는 산성이다. 동헌이나 옥, 창고, 득실거리는 아전들의 집무소 대신 고만고만한 민가들이 옹기종기 들어선 모습이 잔잔하고 평화롭다.

동문재를 넘어 관가지를 벗어나 밖에 나서면 몽산 기슭 양지 바른 향교말이 앞에 있다. 그 발치에 작고 아담한 골정지(骨井池 -고려때 벽골지)가 자리했다. 산과 물, 꽃이 하나 된 연못에 주변조차 고요하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깔끔하게 다듬어진 뚝방 안 바람조차 시비 걸지 않고 지나는 못속에 몽산과 향교가 거꾸로 담겼고, 깜찍하고 아담한 초가지붕의 乾坤一?亭이 얌전히 떠 있다. 자그만 나무다리를 건너 들어가는 품이 소궁남지(小宮南池)다. 때 맞춰 물 위를 스치는 큰 물새 한 마리가 짝을 하나 더 데리고 간다. 군수로 재직하며 치수관리 등으로 농업을 장려하던 연암 박지원의 실학적 숨결이 깃들어 있다니 더욱 가까이 마음속에 들어온다. 정자에 앉아 책을 읽으며 집필하던 당시를 잠시 되돌아본다. 정자 이름은 두보의 싯구 일부다.

몽산성, 읍성벽, 군자정, 골정지 수백년 고목에 눈과 마음이 풍요롭다.

조영연 / '시간따라 길따라 다시 밟는 산성과 백제 뒷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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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연의 산성이야기' 이야기는 이번 회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변함없는 성원과 관심으로 함께 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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