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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여자]여름에는 저녁을- 오규원

우난순 기자

우난순 기자

  • 승인 2018-07-1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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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마당위에는 멍석

멍석위에는 환환 달빛

달빛을 깔고

저녁을 먹는다



숲속에서는

바람이 잠들고

마을에서는

지붕이 잠들고



들에는 잔잔한 달빛

들에는 봄의 발자국처럼

잔잔한 풀잎들



마을도 달빛도 잠기고

밥상도 달빛에 잠기고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밥그릇 안에까지

가득차는 달빛



아! 달빛을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밤은 무엇으로 구분하는가. 휘황찬란한 불빛과 이글거리는 지열이 훅 끼치는 한여름의 도시. 목젖을 톡 쏘며 식도를 서늘하게 미끄러져 내려가는 맥주 한 잔. 밤의 열기에 들뜬 불안한 청춘의 시시껄렁한 웃음소리. 낮이 밤을 삼킨다.

아득한 기억 저편 유년의 추억은 애틋하다. 여름에는 마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멍석을 깔고 두레반에 둘러앉아 상추쌈을 입이 찢어져라 욱여넣는다. 내일은 멸치국수 후루룩 후루룩. 누렁이도 더불어 국수 잔치를 벌일 참이다. 앞산 소쩍새, 뒷산 부엉이.

맹꽁이 배를 깔고 선뜻 잠이 들다 모깃불 냄새에 몸을 돌아 눕는다. 모락모락 보릿대 타는 냄새가 하늘로 피어 오른다. 쟁반만한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다. 달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내 손이 꺼끌거리는 멍석을 움켜쥔다.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오줌이 마려워 일어나 변소를 쳐다본다. 시커먼 아가리를 벌린 도깨비가 눈 부릅뜨고 나를 노려본다. 아기 살 같은 뽀얀 달빛이 마당에 쏟아진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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