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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비혈연 가족과 투 숏의 아름다움

- 영화 <어느 가족>

한윤창 기자

한윤창 기자

  • 승인 2018-08-0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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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것처럼 이 영화는 금년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입니다. 작년 7월 영화 편지를 처음 쓸 무렵 소개했던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입니다. 바람난 남편 탓에 전처 신세가 된 할머니와 가출하고 접대 업소에서 일하는 손녀, 주차장에 세운 남의 차를 털다 만난 아저씨와 소년, 접대 업소에서 일하다 지금은 세탁 노동자로 일하는 여자. 그리고 맨 마지막 부모에게 학대 받다 집 나온 어린 여자아이가 한 집에 삽니다. 빈곤을 기반으로 한 비혈연 유사 가족 이야기입니다.

저마다 일이 있지만 이들은 곧잘 물건을 훔칩니다. 옷, 샴푸, 먹거리 등. 때로 낚싯대 같은 고가품을 훔쳐 목돈(?)을 마련하기도 합니다. 가난하니 그러려니 하지만 이들의 삶은 그리 도덕적이지 않습니다. 한 집 사는 사람끼리도 적당히 속이고, 이용하며 삽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의 삶을 비극적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냉정하지도 않습니다. 때로 경쾌한 재즈 음악을 깔기도 하고, 인물들도 대체로 웃음과 긍정을 보여줍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세상의 파편과도 같습니다. 현실의 어느 한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떨어져 나왔습니다. 가족, 직장, 사교 등의 유형적 현실뿐 아니라 규칙, 제도 등 세상이 돌아가는 주류적 방식에서도 소외됐습니다. 또한 상식이나 윤리, 도덕도 그들을 비껴갑니다. 그런 그들이 한 곳에 모여 삽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인간 본연의 깊은 무엇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공유합니다. 그것은 존재의 슬픔에 대한 도저한 연민입니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가족 영화의 틀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가부장적 전통 윤리나 스위트 홈 등의 가족주의를 말하지 않습니다. 여섯 명이 모여 살지만 거의 모든 장면은 두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합니다. 할머니와 손녀, 아줌마와 어린 소녀, 아저씨와 소년, 소년과 어린 소녀 등이 각각의 장면에서 나누는 대화, 표정, 행동을 세심하게 관찰합니다. 이 장면들에 사용된 방식이 바로 투 숏입니다. 화면의 크기와 카메라의 위치는 클로즈업, 바스트 숏, 풀 숏, 부감 숏 등 다양하지만 이들 투 숏은 파편화된 인물들이 다시 연결되고, 유기체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강제로 뿔뿔이 흩어집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봉합된 듯 보이는 세상의 분열되고 해체된 허구적 실체를 깨닫습니다. 좁은 목욕통에 앉은 노부요와 유리, 늦은 밤 눈사람을 만드는 오사무와 쇼타를 그린 투 숏이 아름답게 기억됩니다.

-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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