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최충식 경제통

[최충식 경제통]소득주도성장 효과 있다? 없다?

최충식 기자

최충식 기자

  • 승인 2018-08-30 08:40
  • 수정 2018-08-30 10:54

신문게재 2018-08-30 21면

657265412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삼각관계 중 가장 센 것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그 강력함에 끌려 '베르테르'를 사이버공간의 이름으로 쓰는 필자 자격으로 말할 수 있다. 로테의 두 남자 알베르트와 베르테를 보완재 아닌 대체재로 분석하고 수요의 교차탄력성으로만 설명한다면 그 고뇌를 너무 모르는 처사다. '젊은 베르터의 고뇌'라고 번역본이 나왔는데 독일어(Die Leiden des Jungen Werther) 원제에 가깝지만 정나미가 안 든다.

서두에서 샛길로 간 것은 매일같이 들어도 생경한 '소득주도 성장(Income-led growth)'이 있어서다. 경제학적인 용어인 임금주도 성장(Wage-led income)을 바꿔서만은 아니다. 소득 증가→ 소비 증가→ 기업 투자와 생산 확대→ 소득 증가의 허구성 때문이다. 54조원인지를 그동안 들이붓고도 7월 취업자 증가가 5000명에 그친 고용 정체도 선순환 구조의 오작동이다. 내년도 일자리 예산을 포함한 보건·복지·노동 예산 162조2000억원이 통과돼 재정 지출을 해도 결국 고용은 기업이 한다. 20년간 국민소득 대비 노동소득 분배율이 62.4~63.3%로 일정했던 점에 착안하면 슬그머니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경제발전론에 입각해 냉정히 보면 현재의 일자리 정책은 선후가 뒤바뀐 셈이다. 돈을 풀어도 소득주도 성장과 경제의 역동성 회복은 쉽지 않다. 임금은 가계에 소득이지만 기업이나 소상공인·자영업에는 비용이 된다는 측면을 가끔 까먹는 경우도 문제다. '직장의 끝'이라는 570만 자영업 종사자의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인위적 구조조정을 저지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방법론적으로도 문제였다. 공공 부문에 쏠려 민간과 시장을 자극하지 못한 실책이 특히 그렇다. 미국 사례에서도 1년 일자리 증가분 240만개의 99.7%는 민간 몫이었다. 민생경제 촉매제냐 세금 중독이냐 등으로 병자호란 당시만큼이나 인식의 갭이 벌어진 정치권도 사실은 우려의 대상이다. 이전의 보수정권 탓과 소득주도 성장 탓으로 또 대립한다. 극단적인 이분법은 사회안전망, 소득 5분위 배율, 지니계수, 가계부채 등 다양한 변수를 보는 눈을 가린다. 고임금 근로자 비중 증가가 실제 경제현실에서 중간 일자리 감소와 일자리 양극화로 흐르기도 한다. 소득주도 성장의 부작용이 소득 양극화로 이어졌다는 황수경 전 통계청장 경질설 관련 논란에서도 곱씹어볼 대목은 있다.

한 발 더 나가, 반대 의견인 경제 정책 수정론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해야 한다. "적폐 세력의 방해"라는 대립각은 아집이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증가가 최소한 김대중 정부의 95만5000개, 노무현 정부의 126만4000개를 넘어서려면 고용 참사, 분배 참사의 지하 1층, 그 아래층도 의식해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을 여권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은 야당은 그 폐기를 정기국회 최우선 목표로 내걸 지경이다. 어느 쪽이 맞는지 확인될 시점은 버스 지나간 뒤가 될 수 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기업 활동이 먼저 활발하면 고용 쇼크가 풀리고 소비할 소득이 생성된다. 원칙적으로 그게 정상이다. 정부 예산안 470조5000억원의 경제 처방전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닌 마중물 효과가 되려면 누울 자리 봐가며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청와대 측이 인정했듯이 소득주도 성장 용어 자체에 얽매일 까닭은 없다. 그럴 아량이면 소득주도 성장의 원인과 결과가 전도된 그 지점까지 훤히 내다보길 권한다. 계획은 계획에 없던 일로 인해 자주 어그러진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 역시 정책에 없던 일로 무너질 수 있음을 정권 내내 기억해 두는 것도 해롭지 않다.
842925184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 기사 모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