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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필톡]유배지로 보낸 편지

우난순 기자

우난순 기자

  • 승인 2018-09-1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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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치욕적이라고 했습니다. 분노를 넘어 비애를 느낀다고 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당신은 지난 6일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작정하고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자기 성찰과 기도로 보냈다고요? 그런데 변명과 회피로 마무리 하더군요. "가진 재산은 논현동 집 한 채가 전부다", "부당하게 돈을 챙긴 적이 없다"면서 정경유착은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라고 발뺌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비겁하고 초라해 보이던지요. 검찰은 당신에게 뇌물수수와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20년, 벌금 150억원, 추징금 111억여원을 구형했습니다. 구형 이유는 "전례 없는 부패 사건으로 대통령 권한을 사욕 추구 수단"으로 보았습니다. 영어(囹圄)의 생활은 어떠신가요. 감금된 몸이 됐으니 유배나 다름 없겠지요. 대다수 국민들은 당신을 국정농단의 싹을 틔운 장본인이라며 중형을 면치 못할 거라고 합니다. 어쩌면 기나긴 시간 유폐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자유가 없는 삶이 어떠한지 감히 상상하기 힘듭니다. 이유야 어떻든 사무치는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겠지요. 고립무원입니다. 당신과는 사안이 전혀 다르지만 다산 정약용이 떠오릅니다. 정인보는 "다산 선생 한 사람에 대한 연구는 곧 조선사의 연구요, 조선 근세사의 연구"라고 했습니다. 그런 불세출의 천재가 18년이라는 유배생활을 겪었습니다. 시기와 모함이 원인이었지요.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까닭에 적들이 많았습니다. 노론은 호시탐탐 다산을 쳐낼 기회만 보았습니다. 드디어 꼬투리를 잡았습니다. 소싯적 천주교에 적을 둔 게 빌미였습니다. 이른바 신유사옥이라고 합니다. 결국 전남 강진으로 귀양을 갔습니다. 그 절망과 좌절감이 얼마나 컸을까요. 명문가의 자제로 승승장구하다 하루아침에 죄인의 몸이 되었으니까요.

허나 다산은 유배지에서 한탄만 하며 허송세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품이 훌륭한 선비였습니다. 지적 욕구도 강했습니다. 백성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무엇보다 컸습니다. '정치는 백성에게 묻는 게 으뜸'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목민심서' 등 많은 실학서가 피폐한 백성의 삶을 살피는데 주안점을 둔 사실이잖습니까. 방대한 저술 작업으로 머리카락이 다 빠질 정도였다니 그 정성이 대단합니다. 다산에게 강진에서의 삶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기뻐했다는군요. 백성의 고통과 사회체제의 모순을 제대로 알게 되는 시간이라고요. 거기다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제자를 양성하는데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아니고서는 당시의 시대상황에선 불가능했습니다. 정치는 백성이 우선입니다. 당신의 마음에는 무엇이 자리잡고 있었나요.



당신은 유난히 돈에 집착하셨다지요. 그렇죠. 욕망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커지기 마련입니다. 채워질수록 허기지는 게 사람의 심리입니다. 그래서 다스는 당신 겁니까. 권력은 무상합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은 한낱 연기같은 권력에 목숨을 겁니다.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나라를, 조직을 사유화합니다. 당신같은 인간들이 그렇게 만행을 저지르면 세상은 퇴보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땅에 떨어집니다. 다산은 나이 60에 '자찬묘지명'을 지었습니다. 스스로 쓴 자신의 묘지명이란 뜻이지요. 거기서 다산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60년은 모든 죄에 대한 뉘우침으로 지낸 세월이었다. 이제 지난 날을 거두어 정리하고 일생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 당대의 석학 정약용의 참회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당신의 반성은 가능합니까. 전두환의 뻔뻔함에 치가 떨리는 경험은 또 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웁니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우난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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