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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 사랑방

김희정 시인(한국작가회의 감사)

원영미 기자

원영미 기자

  • 승인 2018-11-0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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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시인
어릴 적 누나들의 치맛자락을 잡고 마을회관에 갔다. 누나들은 동무들과 모여앉아 누가 귀신 봤다더라, 누구는 연애하더라, 집안일을 하다 혼이 났다, 같은 이야기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다. 어린 내가 담소를 듣다가 졸다보면 새벽을 향해 달려가는 달을 볼 때가 많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마을 회관은 꿈 많은 누나들의사랑방이었다.

이번에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작은 서점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업 신청서를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은 중소서점은 거의 소멸이 되고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이 사업을 설명한다면 지역 서점들과 동네 서점에 작가(시인)들을 파견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이벤트를 여는 것이다. 작가 입장에서는 독자들을 만날 수 있고 서점 입장에서는 단순하게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닌 강연, 북 콘서트, 시노래 콘서트, 공연까지 볼 수 있는 장소가 된다.

지역 책방을 20년째 지키고 있는 계룡문고는 청소년과 어른을 위한 실용적인 글쓰기 강좌를 열고 상주 작가가 서점을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해 '책 고르기, 독서'에 대한 상담을 해 준다. 동네 서점인 가까운 책방(대흥동)과 우분투북스(궁동)는 네 명의 작가(김나무 극작가, 김채운 시인, 유하정 동시인, 정재은 SF동화작가)가 직접 한 달에 두 번씩 강연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들고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아직 시골에는 그 시절 사랑방 역할을 했던 마을회관이 남아있다. 20대 초반의 누나들이 70대가 되어 아침에 출근해서 점심을 함께 먹고 해거름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때의 낭만이 살아있을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사랑방의 공간으로 남아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역 서점의 위기, 동네 서점의 위기라는 말은 10년 전부터 흘러나왔고 그 말이 소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지역 서점들은 문을 닫거나 오늘내일 하면서 폐점 준비를 하고 있다. 동네 서점들은 여기서 더 보탤 필요가 없을 정도다. 학교 앞 동네 서점은 간판만 서점이지 참고서나 문제집을 판매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고 아직 문을 닫지 못하고 있는 지역 중소서점들 역시 동네 서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허태정 대전시장 취임 100일이 지났다. 시장이 직접 참여해 문화예술 세미나도 했고 공약 발표도 일주일 전에 있었다. 대전시와 대전문화재단에 이런 제안을 해본다. 지역 서점과 동네 서점들을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보자. 누구나 들러 책도 보고 공연과 전시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면 어떨까. 그럼 작가(시인)도 생활에 도움이 되고 지역 서점이나 동네 서점들도 지금보다 조금은 숨통이 트일 수 있을 것 같다.

지역의 작가들이 다양한 공연과 강연 등을 수시로 열어 시민들과 동네 주민들이 시골 마을회관처럼 찾을 수 있게 하자. 그럼 작가들은 독자를 만날 기회가 생기고 서점(동네 책장)들은 참고서가 아닌 서점의 역할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시민들이나 동네 주민들은 문화적 공간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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